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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아래)과 포르셰 로고. 지난 7월 폭스바겐은 포르셰를 전격 인수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몸살
결국 세계 자동차업계는 최근 1년 사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 GM은 북미 공장 17개를 폐쇄하고 생산직 종사자 2만3000명을 감원했으며, 크라이슬러는 북미공장 7개를 폐쇄하고 생산직 종사자 7000명을 줄였다. 파산 이후 이처럼 강도 높은 구조조정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했다. 포드는 올해 상반기 생산량을 42%나 감축하면서 인력을 1만4000명 줄였다.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도 대규모 생산량 감축과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도요타는 올해 생산량 30%와 비정규직 종사자 6000명 및 해외 공장 정규직 1000명, 혼다는 1월 생산량 24%와 비정규직 종사자 4300명, 닛산은 1, 2월 생산량 60%와 정규직 4000명을 포함해 2만명을 이미 줄였거나 줄여나가고 있다.
유럽 자동차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푸조 시트로앵은 올 생산량을 20~30% 감축하는 한편, 1만~1만2000명 규모의 감원을 진행 중이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흑자를 본 폭스바겐도 스페인과 슬로바키아 공장 조업을 중단하고, 비정규직 종사자 8000명을 내보냈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위기를 맞았다. 쌍용자동차는 현재 파산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2000여 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계획안을 마련했지만, ‘회생’과 ‘청산’을 놓고 채권단 사이에 이견이 생겨 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놓은 상태다.
이러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그나마 토종 국내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이하 현대·기아차)가 유일하게 선전했다. 올해 1/4분기 현대차는 1538억원의 영업이익과 22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각각 71%, 43% 줄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감안하면 선방한 셈. 기아차도 같은 기간 88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글로벌 경제 및 금융위기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든 후반기로 가면서 현대·기아차의 경영실적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3/4분기 영업이익이 9000억원에 달한 것. 1분기 2420억원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적자를 본 도요타(-3000억원)나 BMW(-1000억원)와 크게 대비된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선전한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먼저 미국과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시장점유율이 높았던 점을 꼽을 수 있다. 그 덕에 이들 국가들이 경기회복을 위해 내놓은 ‘신차 구입 지원정책’의 혜택을 고스란히 보게 됐다는 것.
특히 신흥시장 이외에도 유럽 주요 국가들의 신차 구입 지원정책 대상이 주로 소형차에 집중되면서 저가의 소형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던 현대·기아차의 판매율 상승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노후차 교체지원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도 현대·기아차였다.
여기에 원화 약세로 달러(엔)당 환율이 올라가면서 판매 감소에 비해 매출액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 상대적으로 일본 업체들은 엔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2010년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세계 각국의 신차 구입 지원정책이 거의 종료됐다. 국내 노후차 교체지원 정책도 올해 12월 말까지다. 원화도 달러당 1300원대에서 최근 1100원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또 내년부터 신흥시장에서 미국 유럽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된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업체 간의 M·A와 전략적 제휴가 그 신호탄이다. GM은 이미 중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상하이GM, 상하이GM울링에 이어 제일기차와 경상용차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포드는 인도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첸나이공장 생산능력을 연간 20만대로 확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에는 현지 생산능력을 연간 60만대로 늘리기 위해 제3공장 신설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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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조합원들이 지난해 사측과 임금단체협약 협상과정에서 부분 파업을 벌이며 투쟁결의 집회를 갖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종사자들의 의식변화가 시급하다.
‘방심은 금물’, 새로운 위기 대비를
르노는 인도 첸나이에 공장을 신설해 글로벌 소형차 생산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며, 다임러벤츠는 독일 이탈리아 미국 일본에 이어
5번째로 중국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중국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피아트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광주기차와 공동으로 5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최대 14만대까지 생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바이오연료자동차 라인업 확충을 통해 브라질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 태국을 동남아는 물론 새로운 글로벌 수출거점으로 삼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 중국에 이어 3번째로 태국에 하이브리드자동차 생산라인을 신설해 지난 8월부터 생산에 돌입했다. 닛산은 아시아와 중동, 호주 등을 시장으로 삼을 최대 픽업 생산기지를 태국에 세울 계획이다. 닛산과 스즈키는 인도에도 대규모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이들 신흥시장에 내놓을 ‘무기’는 바로 고연비 친환경 경·소형차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이들 업체 간의 M·A와 전략적 제휴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등 차세대 기술에서 앞서 있음은 물론, 연구개발(R·D) 투자규모가 현대·기아차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6배 이상 큰 업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R·D 규모는 2조1200억원 정도인 데 비해, 도요타는 무려 12조원에 가까운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주력해 600만대 생산시설을 갖췄다. 이제는 시장경쟁력을 갖춘 마케팅 업체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 경쟁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현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함께 종사자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막대한 생산시설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외국 업체들보다 경영사정이 좀 나았다고 방심하다간 한순간에 결코 되돌리기 어려운 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