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계획은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고
국민도 동원된 사기극 이게 우리 수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9월 30일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충청권에서 득표 1위를 차지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6일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회의'에서 "이 주제로 재미 좀 봤다"고 했다.
당시 신행정수도특별법과 관련,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충청권 의원들로부터 극심한 압력을 받으며 권고적 당론으로 '찬성'을 채택, 12월 29일 본회의에서 199명 중 167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찬성표를 던졌다.
2004년 탄핵을 거치며 박근혜 대표는 새로운 한나라당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충청권 선거유세에 다닐 때마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된다"며 거듭 약속했다. 결국 2004년 총선 결과 박 대표의 한나라당은 299석 중 121석을 확보하며 탄핵 역풍을 뚫고 당의 존립을 지킬 수 있었다.
최병렬 대표는 훗날 "법안에 찬성하여 충청권 표심을 잡고, 총선 이후 발목을 잡자고 의원들을 설득했다"며 선거 정략이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실제로 총선 이후 2개월이 지난 2004년 6월 21일,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 의총에서 "지난해 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우리 실책이 컸다"면서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를 놓고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나 의견수렴,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 "한나라당의 안은 후세들에게 타당하고 옳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안이 돼야 한다"며 행정수도 관련 공개 사과를 하며 입장을 바꿨다.
이러한 박 대표의 입장 변경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충청권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본인이 찬성하고 총선 때 국민 앞에서 거듭 약속한 법안이 위헌판정을 받았음에도 "법치주의의 승리"라며 자축했다.
열린우리당과 박 대표의 한나라당 측은 헌재의 결정대로 국민투표 등의 동의를 구하는 대신, 수도 행정 기능을 분할하는 행복도시특별법을 2005년 3월 2일 통과시킨다. 이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수도 분할은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 대통령조차 2007년 대선 당시,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쁜 법안을 충청권의 여론 때문에 또다시 약속했고, 결국 당선 이후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박근혜 대표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2007년 7월 20일 충남 연기군에서 열린 행정도시 기공식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업무 효율상 매우 불합리한 결과이며,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꼭 행정수도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정부부처는 모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순리"라며 수도 기능 분할의 위험성을 퇴임 직전까지 지적했다. 노 대통령을 승계했다던 민주당이 행복도시특별법을 변경 불가의 경전으로 삼고 있지만, 노 대통령의 원안은 수도이전이었지, 수도 기능 분할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불쑥 던지면서 시작된 수도를 담보로 한 국민사기극은 멈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친노세력, 친이계, 친박계가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국민의 사기극이고, 국민이 수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이들 세력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국민에 의한 사기극이며, 현재까지의 결과로서, 대통령은 서울에 있고, 총리는 세종시에 있는, 그 어떤 역사에도 없었던 해괴한 수도 모형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을 위한 사기극이다.
남북통일의 전망도 고려치 않고, 국가의 미래세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지역 사업권만 탐욕스럽게 챙겨 가고, 제 정파의 선거용 전략에 적극 동조해주는, 그런 수준의 국민들이 살아가기 딱 좋은 나라가 바로 수도 기능이 두 쪽 나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