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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사슬

화이트보스 2010. 1. 14. 16:33

짝사랑의 사슬

 
2010-01-14 03:00 2010-01-14 03:00 여성 | 남성


A는 B를 사랑한다.

하지만 B는 A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절망에 빠진 A가 B 앞에 나타나 말한다.

“죽어버리겠다!”

그런데 B의 심드렁한 대답. “죽든지, 말든지…”

사실 B는 C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C의 속마음은?

짝사랑만큼 애처롭고 비극적인, 그 때문에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렇게 많은 이야기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된 게 또 있을까. 비단 개인 사이의 짝사랑만이 아니다.

2004년 여름, 파리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놀란 것은 당시 노무현 정권의 ‘프랑스 사랑’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해찬 국무총리를 책임총리로 하는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려 했다. 프랑스식 국방개혁을 추진했고, 프랑스 사례를 들먹이며 ‘과거사 청산’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말한 프랑스 사례 대부분은 내가 직접 살면서 겪은 프랑스 현실과는 다른 견강부회()였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의 프랑스 사랑은 일방통행이었다. 특파원 시절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가서 한국과 북한, 서울과 평양을 헷갈려하는 우체국 직원들 때문에 황당했던 일이 적지 않았다. 프랑스 지식인들도 ‘김정일’은 알지만 ‘노무현’은 몰랐다.

노무현 정권의 프랑스 짝사랑은 2007년 5월 집권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우파개혁으로 쏙 들어갔다. 문제는 사회주의 소련과 동구권 몰락에 이어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회민주주의 프랑스마저 ‘변절’하자 국내 좌파가 더욱 노골적으로 친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지난해 나온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에는 좌익·월북 친일인사의 이름이 대부분 빠졌다. 누가 봐도 ‘북한 짝사랑’이 확연한 이 사전에는 외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노래 ‘짝사랑’의 작곡가 고() 손목인 씨가 포함됐다.

고인은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되는 ‘짝사랑’(고복수 노래) 외에도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아내의 노래’ ‘슈샤인 보이’ ‘아빠의 청춘’ 등 일제와 광복 이후 민족의 애환을 담은 불후의 애창곡을 남겼다. 이런 작곡가를 친일가요를 몇 편 지었다고 꼭 친일파로 매도해야 했을까.

아무튼 국내 좌파의 지독한 짝사랑에도 북한은 반응이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무수한 애정공세를 폈지만, 북한이 반응을 보인 것은 돈이나 식량 등 선물을 받을 때뿐이었다. 그 이유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내가 판문점 출입기자를 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북한의 관심은 오로지 미국이었다.

짝사랑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사람처럼 북한이 핵 시위를 벌이는 이유도 오직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철천지 원쑤 미제’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다 미국이 콧방귀도 안 뀌자 ‘6자회담 내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꼬리를 내리는 북한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런 북한의 저자세에도 미국은 ‘먼저 비핵화부터 하라’고 문을 걸어 잠갔다. 이 역시 미국의 관심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적 관심사에서 북한 문제는 중동·중앙아시아 이슈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거들떠보지 않는 미국의 문을 두드리는 북한, 그런 북한에 짝사랑을 퍼붓는 국내 좌파가 노래 ‘짝사랑’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잃어∼진(버린)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