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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市)와 실용(實用)의 정치김대중·顧問

화이트보스 2010. 1. 18. 10:15

세종시(市)와 실용(實用)의 정치

 

입력 : 2010.01.17 22:04 / 수정 : 2010.01.18 05:36

김대중·顧問

"李·朴 두 진영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대선 앞둔 朴측 물러설 리 없어 현명하게 후퇴하는 카드
李대통령이 던져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화해하거나 타협할 여지는 이제 없는 것 같다. 세종시 문제건 세종시 문제를 떠나서건 그렇다. 같은 이념적 테두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다. 애당초 화해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어도 적어도 같은 정당 사람이라 정치적 타협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타협은커녕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에 탄 신세다.

게다가 두 진영(陣營)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들 눈에는 정당도, 정권 재창출도, 국민의 눈총도, 나라의 앞날도 안 보이는 모양이다. 마치 민국의 정치무대에 자기들 두 사람만 있는 양, 안하무인이다. 생각없이 막말해대고 서로 말꼬리 잡고 원수처럼 앙칼지게 싸운다. 총만 들려주면 살인 날 것만 같다. 이들의 싸움은 갈수록 감정적이고 노골적이고 해악적이다. 어찌 보면 세종시는 그동안 안으로만 끓던 두 진영이 마침내 밖으로 뛰쳐나와 죽고 살기를 겨루는 'OK목장' 같다.

두 사람 간의 문제는 두 진영의 승패로 끝나는 차원을 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나라당 두쪽 나고 보수-우파세력 쪽박 차고 정권 재창출 물 건너가고 글로벌 도약 멍들고 한국의 미래에 먹칠하기 십상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많이 참았다. 이 대통령에게 표를 준 사람이나 박 전 대표에게 표를 줄 사람들 모두 혀를 차면서도, 욕을 하면서도 그래도 큰 명제(命題) 앞에서 정신 차리겠지 하며 지켜봤다.

비록 표에 이끌려 공약은 했어도 '백년대계'를 고려해 커밍아웃한 이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신뢰 없는 정치는 무의미하다고 고집하는 박 전 대표의 정치철학도 충분히 일리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비론(兩非論)보다 양시론(兩是論)에 무게를 두며 저들이 어떤 정치적 타협이나 양보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쪽은 이 대통령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박 전 대표가 세상이 두쪽이 나도 세종시 문제에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접근방식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수도 분할할 적기가 아니다. 행정부처 몇 옮겨가지 않으려고 원안의 배가 넘는 16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으로라도 세종시를 수정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경상+충청'으로 대권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한치도 물러설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박 의원으로서는 어떤 차선도 절대사절이다. MB가 지금 그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역시 그럴 것이다. 이미 지난 대선 때 전례가 있지 않은가. 따라서 '백년'의 대계(大計)보다는 '2012년'의 정권 재창출에 양보하는 것이 순서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불행히도 세종시는 이미 '정책'이 아니라 '정치'다.

다른 측면은 지금 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로 발목잡혀 있을 한가한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할 일이 많다. G20 회의의 원만한 수행과 한국의 글로벌세력화, 실업을 줄이고 경제를 제 궤도에 올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 등은 이 시대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세종시 문제가 아무리 논리에 맞아도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미래를 먹여살리는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혹자는 이 대통령이 여기서 물러서면 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위축되며 조기 레임덕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표결로써도 세종시에서 이기기 어렵거니와 이긴다고 해도 반대급부가 너무 커 정권이 탈진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 박 전 대표측의 강력한 저항은 결국 당의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MB정치는 효율성을 잃고 지리멸렬해질 것이며 정권 재창출도 위태롭게 된다. 이겨도 잃는 것이 더 많게 되는 것이다.

그보다 카드를 던짐으로써 이 대통령은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일단 '옳은 정책'이라도 '현명하게 후퇴할 줄 아는' 융통성과 용기를 인정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얻어낸 친박측의 협력은 국정(國政)전반에서 크게 빛을 발할 것이다. 그렇게 단합된 모습의 여당은 6·2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새롭게 어필할 기회를 얻을 것이고 원활한 전당대회는 MB의 레임덕 기간을 많이 줄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의미있는 정치적 소득은 정권의 연속성에 힘입어 이 대통령이 '괄목할 업적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말하는 실용의 정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