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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비를 활용해 재배한 딸기 비닐하우스를 둘러보는 강혁 대표. |
지난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 언덕에 152세대가 살 수 있는 5층짜리 공동주택 3동이 들어섰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시조격인 종암아파트다.
그리고 만 50년이 2009년, 기록으로 남겨질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가 통영에서 첫 선을 보였다.
종암아파트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기록됐다면 이 아파트는 세계 농업역사에 기록될 법하다.
16층 1개동에 입주가능 세대수 최소 96세대, '흙이 비상한다'는 범상치 않은 뜻의 한자명 '土飛(토비)'에 영문명 'ToBi'라는 번듯한 브랜드 네임까지 갖고 있다.
여느 아파트와 다름없는 재원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특이사항이 있다. 사람이 아닌 식물이 산다는 것.
식물이 사는 아파트라 사실 실물은 그다지 볼품없다. 얼핏 보기에 은박지를 칭칭 감은 원통형 스티로폼을 층층이 쌓은 단순 시설물에 가깝다.
하지만 '농작물은 땅에서 재배한다'는 틀을 깨고 동일면적과 제반비용으로 수확량을 10배 이상 늘리도록 했다는 점에서 공간재배 기술의 신기원을 열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비를 개발한 녹색혁명코퍼레이션 강혁 대표는 "쉽게 말해 아파트의 개념을 농작물 재배에 도입해 면적낭비를 줄이고 생산효율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스티로폼 제질 원통에 평연완경 등 배지를 채우고 표면에 여러개의 구멍을 뚫어 씨앗이나 모종을 이식, 영양분과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스티로폼 원통을 토비라 부른다. 토비가 10배 이상의 다수확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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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비 개념도. |
간격을 좁혀 구멍 개수를 늘릴 수 도 있다.
토비 4개를 쌓을 경우, 바닥을 차지하는 면적은 동일하지만 작물재배가 가능한 면적은 바다면적의 4배가 넘는 가로 200㎝, 세로 500㎝가 된다.
당연히 재배 면적이 넓어진 만큼 수확량도 늘어나게 된다. 기존 평면재배 대비 재배량이 4배 가량 많아지는 셈이다.
수직재배로 인한 일조량의 한계는 토비 외부에 반사필름을 입히고 하단부에 회전판을 달아 해결했다.
반사필름의 난반사를 통해 그늘진 표면에도 태양광이 비치게 한 것이다. 하단부 회전판은 층층이 쌓인 토비를 통째로 돌릴 수 있는 손잡이다.
비닐하우스 위쪽으로 쏠려 날아가버리는 난방열을 잡기위해 천정에 소형 선풍기를 달아 열기가 위, 아래에 골고루 퍼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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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비에서 자란 딸기. |
9월초 심은 딸기 모종 6만주가 빠짐없이 꽃을 피웠고 12월 중순 첫 수확과 동시에 상품 출하까지 마쳤다.
색상, 크기, 당도면에서 일반 밭에서 키운 것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당도가 15브릭스까지 나왔다. 일반 상품 딸기의 당도는 13브릭스 수준이다.
열매가 수직으로 달리다 보니 쪼그려 앉지 않고 서서 수확작업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병충해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딸기 농사에서 흔히 발생하는 잿빛곰팡이도 딱 한 번 출현했다 저절로 없었다"며 "한정된 면적에서 과밀이 될 수밖에 없는 기존 방법과 달리 개체간 독립된 공간이 확보되는 토비의 특성상 습기가 차지 않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딸기 재배로 토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현재 허브, 국화 등은 실제 시험재배를 진행하고 있다. 스티로폼 제질의 특성을 활용해 여름에는 고랭지 채소 재배도 할 수 있다"며 "상추, 엽채, 인삼, 화훼, 구근류 등 다양한 작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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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비더미 사이 통로. 흙이 없어 깨끗하다. |
강 대표의 실험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국내 농업전문기관에서도 토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남도농업기술원과 경북 칠곡군농업기술센터, 청도군 개인농가에서 이미 토비를 이용한 실험재배를 하고 있다. 경남도농업기술원은 내년부터 실험재배를 시작한다.
강 대표는 "250평 비니하우스 1동을 기준으로 초기 시설투자비용이 약 7천만원이다.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현 딸기 시세를 감안할 때 한해에만 1억8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비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확기를 제외하면 부부만 있었도 관리가 가능하고 난방 면적은 기존 같아 열에너지효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며 "고품질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내놓을 수 있는 만큼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