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이명박 대통령의 戰作權 딜레마

화이트보스 2010. 2. 10. 15:47

이명박 대통령의 戰作權 딜레마

입력 : 2010.02.09 22:16 / 수정 : 2010.02.09 23:25

한·미 전작권 합의 지키든 뒤집든 한국 부담은 줄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 결정 늦출수록 전작권과 안보에 구멍 뚫릴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戰作權) 문제는 여러 면에서 세종시와 닮은꼴이다. 두 사안 모두 전(前) 정권이 정치적 동기에서 밀어붙인 일들이면서도 마지막 마무리는 지금 정권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세종시가 충청 표를 겨냥한 맞춤형 상품이었다면, 전작권은 2002년 대선에서 "반미(反美)면 어때"라는 구호에 홀렸던 '노무현 지지층'을 향한 러브콜이었다.

세종시처럼 전작권도 되돌리기 어렵게 돼 있다.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려면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고쳐야 하듯 전작권도 한·미(韓·美) 합의를 뒤집어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와 정치의 벽에 막혀 있다면, 전작권은 미국에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조차 막막한 상태다.

세종시와 전작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 두 문제에서 전임자와 정반대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세종시는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소신과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반면 전작권 문제에선 일관된 입장을 지켰다는 것이다. "미국과 전작권 이양 시기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취임 2년이 다 되도록 전작권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얼마 전 "2012년 전작권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이 가장 나쁜 상황이며 대통령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도 "전작권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의도를 갖고 잘못 내린 결정"이라고들 한다. 관료들이 대통령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이렇게 자신있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도 이런 기류를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선뜻 이 문제를 꺼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측에 전작권 재협의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은 2012년 4월 17일을 기해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주기로 한 기존 합의를 바꿀 생각이 없는 듯 움직이고 있다. 주무부처인 미 국방부가 특히 그렇다. 최근 발표된 미 국방부의 전략지침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를 보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힌 듯하다.

물론 국제관계에서 바꿀 수 없는 조약이나 협정은 없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에 원안(原案)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붓겠다고 했던 것처럼 전작권 합의를 바꾸는 데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전작권 이양에 맞춰 2006년 발표한 군(軍) 전력 증강 5개년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만 151조원에 이른다. 전작권 이양 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이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방위비와 무기 구매 등에서 더 큰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 섣불리 전작권 재협의를 요구했다가 우리 몫의 청구서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이 전작권 문제 제기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자국(自國) 안보에 그 정도 부담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그런 각오를 갖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돌려주겠다는 전작권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부담은 부담대로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런 한국의 모습이 바깥 세계에 어떻게 비칠 것이며, 전작권 문제를 '자주와 주권'의 동의어(同義語)쯤으로 여기는 국내적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전작권 이양 시기를 늦추는 데 대한 실익(實益)이 무엇인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작권 문제는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통령이 전작권을 넘겨받는 것에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정부와 군 관료들이 과연 2012년 전작권 이양에 대비해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을까. 관료의 속성과 조직 문화의 상례(常例)에 비춰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전작권 문제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작권을 넘겨받았는데 안보상 허점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세종시는 수정안이 좌초되면 원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지만, 안보에 구멍이 나면 돌이키기 힘든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전작권 문제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