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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있어야 내가 있다” 확 달라진 쌍용차 노조

화이트보스 2010. 3. 1. 20:33

"회사 있어야 내가 있다” 확 달라진 쌍용차 노조 [중앙일보]

2010.03.01 18:35 입력

가동률 99% 설비고장률 0.4%
10%대 지각·조퇴 0.4%로 감소
무노동 잔업수당도 사라져

지난달 26일 오전 8시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조립3공장. 일과 30분 전인데도 의장·섀시 라인의 모든 직원은 이미 출근한 상태였다.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바닥을 청소하고, 장비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조립3팀 하승범(42)씨는 “지난해 파업 이전만 해도 장비를 점검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지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며 “극렬했던 파업과 인력의 33%를 줄이는 감원의 아픔을 겪은 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들 일찍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구조조정에 반대해 벌인 77일간의 파업 당시 이곳 조립3공장은 장비와 부품들이 뒤엉킨 아수라장이었다. 파업을 이끌던 지휘부가 외부인의 진입을 막기 위해 각종 자동차 오일을 쏟아부어 바닥에는 기름이 발목까지 차 있었다. 지난해 8월 파업이 종료되자 직원들이 밤낮없이 청소를 해 6일 만에 생산라인을 복구했다. 타이어와 차량 등이 불태워졌던 조립공장 앞 광장도 이제는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생산 재개 후 생산성은 파업 전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공장 가동률(주간 기준)이 파업 이전 93%에서 현재 99%로 높아졌고, 설비고장률은 3%에서 0.4%로 감소했다. 12~16%나 됐던 지각·조퇴도 0.4%로 확 줄었다. 홍보팀 곽용섭 차장은 “직원들이 일터와 일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시간당 생산대수도 파업 전 18대에서 현재는 22대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생산성 향상은 대규모 감원에 힘입은 바 크지만, 노조가 앞장서고 있는 근로문화 개선운동도 큰 역할을 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해까지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업을 해온 민주노총 산하의 대표적 강성노조였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새 노조 집행부는 파업과 투쟁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민주노총·금속노조에서 탈퇴한 후 무분규 방침을 공식화했다. 또 라인 세우기, 무노동 잔업수당 등 잘못된 관행을 없앴다. 노조 간부들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관용차량과 유류비를 반납하고 전임자 숫자도 반으로 줄였다. 노조가 오랜 기간 누려온 특권을 과감히 버린 것이다. 이규백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노조는 쌍용차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회사와 공유하고 있다”며 “민주노총를 탈퇴하면서 절약한 조합비 3억원을 지역 불우이웃돕기 등에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측도 노조의 이런 변화를 고맙게 여기고 있다. 하광용 생산본부장은 “예전에는 노조와 대화할 때 상대방이 내 말을 악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 정도로 불신의 벽이 높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노조의 적극 협조로 현장직원들과의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라인을 바꿔 근무하는 ‘교차 생산방식’과 작업을 몰아서 한 뒤 휴식을 취하는 ‘집중 생산방식’ 등을 도입한 것도 노조의 협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 본부장은 “다른 완성차 업계에서는 노조의 반발 때문에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평택공장 직원의 약 70%는 가족과 함께 평택 인근에서 거주한다. 평택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쌍용차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도 많다. 쌍용차에 22년간 몸담은 차체1팀 황주원(47)씨는 “10년 넘게 같이 일하던 동료가 직장을 잃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며 “지난해 극심한 파업을 겪으면서 투쟁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내 일자리와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쌍용차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좋지 않다. 핵심 과제인 신차 ‘C200’ 출시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 종료 이후 1300억원을 쌍용차에 투입한 산업은행이 추가 자금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자금 사정이 악화돼 지난달 쌍용차 임직원들은 월급을 절반밖에 못 받았다. ‘C200 출시→이익 창출→매각 성공’이라는 쌍용차 정상화 로드맵에 큰 고비가 온 것이다. 김규한 노조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금 지원을 호소하는 편지를 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평택=이종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