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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평상 위 가사만 덮고 ‘마지막 길’

화이트보스 2010. 3. 12. 23:03

대나무 평상 위 가사만 덮고 ‘마지막 길’

장례절차 없이 송광사로 운구… 신도들 오열
“죽을때 어지럽지 않도록 하라” 유언 추가공개
법정 스님 13일 다비식

경향신문 | 김종목 기자 | 입력 2010.03.12 18:12 | 수정 2010.03.12 18:34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광주

 




법정스님의 마지막 길도 '무소유'의 길이었다. 화려한 관 대신 대나무 평상 위에 가사만 덮고 떠났다. 평상은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법정스님이 평소 애용하던 것과 비슷한 대나무 평상이었다. 거창한 장례 절차도 없이 3배 의식만 치러졌다. 일체의 의식을 받들지 말라는 스님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정진의 힘으로 죽을 때 어지럽지 않도록 하라"는 스님의 유언도 추가로 공개됐다.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법구가 12일 낮 12시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떠나 다비장이 마련된 전남 순천 송광사로 떠났다. 송광사는 스님의 출가본찰이다. 다비준비위원회는 오전 11시30분쯤 법구를 경내 행지실에서 극락전 앞마당으로 옮겨 3배를 고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엔 먹장구름이 두껍게 끼어 있었다.

시민들 '마지막길' 배웅 12일 길상사에 모인 시민들이 합장한 채 법정스님의 법구가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이날 성북동 골짜기 길상사에 모인 인원은 6000여명. 신도들은 운구차 주위로 몰려들어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많은 시민들도 법구가 모셔진 영구차를 어루만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맑은 도량에 스며들었다. 운구차가 송광사로 떠난 뒤에도 신도들은 길상사 극락전과 분향소가 설치된 설법전에 모여들어 극락왕생을 빌었다. 경찰의 호위를 받고 길상사를 나선 운구차는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따라 이동, 오후 5시쯤 송광사에 도착했다.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과 사중스님, 신도들이 법구를 맞았다. 법구는 문수전에 안치됐고 분향소는 지장전에 마련됐다.

법정스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도 공개됐다. 다비준비위 대변인 진화스님은 "입적하시기 전날 밤 '어디서든지 내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잘 하라. 정진의 힘으로 죽을 때 어지럽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전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식을 또렷이 유지하신 것으로 보인다"면서 "스님은 병상에서도 계속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곳에는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해 상좌스님들이 길상사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길상사에는 법정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다비준비위는 "12일까지 1만명 정도가 조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길상사 설법전 분향소를 찾아 영정을 향해 합장하고 머리 숙여 조의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에 존경하던 분으로 저서도 많이 읽었는데 마음이 아프다. 살아 있는 많은 분들에게 큰 교훈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분향소는 늘어났다. 길상사와 송광사에 이어 서울 정토회관, 대전 백제불교회관, 광주 태현사, 경남 창원 성주사 등 전국 사찰들이 스님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자발적으로 설치했다. 길상사 프랑스 파리분원도 현재 분향소를 마련하고 조문을 받고 있다.

다비식은 13일 오전 11시 송광사 다비장에서 봉행된다. 다비준비위는 영결식을 하지 않고 다비의식만 치를 예정이다. 조화나 부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 다비식 이후에는 49재와 추모법회가 진행된다. 다비준비위는 "입적한 지 7일째 되는 초재는 17일인데, 초재부터 6재는 길상사에서 지내고, 막재(7재)는 다음달 28일 송광사에서 치러진다"고 밝혔다. 오는 21일에는 길상사에서 추모법회가 열린다.

<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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