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쑨리핑 지음|김창경 옮김|산지니|400쪽|1만5000원
“중국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국민 1인당 연필 한 개만 팔아도 13억 개다.”
이런 엉터리 ‘중국론(中國論)’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중국 붐이 한창이던 90년대 초의 일이다. 수교 15년이 지난 현재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중국 환상은 많이 깨졌다. 하지만 아직도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우를 자주 범한다.
중국은 참 묘한 나라다. 중국을 한번 갔다 온 사람은 가기 전보다 헷갈리고, 그곳에서 10년 산 사람은 말하기를 더욱 꺼린다.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의 마천루에 감탄하다가도 산시성(山西省) 벽돌공장의 노예노동에 혀를 찬다. 세계 3번째 유인우주선이 발사된 다음날 가짜·불량식품 뉴스가 신문 머리를 장식한다. 이처럼 큰 편차 때문에 ‘중국은 이렇다’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답은 없다. 사격에서처럼 끊임없이 ‘영점(零點)을 조준하면서 정답에 접근하는 방법 뿐이다. 중국 청화(淸華)대학 쑨리핑(孫立平) 교수가 쓴 ‘단절(원서명 斷裂:20世紀90年代以來中國社會)’은 우리의 시각을 ‘영점조준’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만약 그 동안 ‘유인우주선과 푸둥과 중관춘(中關村·IT기업과 연구소가 모여있는 베이징의 거리)’에 너무 시선을 빼앗겼거나, 단위의 끝에 0이 하나 더 붙는 ‘숫자의 마력’에 홀렸다면, 이 책은 좋은 백신이 될 것이다.
- ▲ 중국 상하이에서 한 행상이 철거를 앞둔 동네 앞을 걸어가고 있다. 멀리 최신식 고층빌딩이 보인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지만빈부격차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AP
‘단절’이란 ‘끊어지고 갈라진다’는 뜻이다. 저자는 중국 사회가 90년대로 들어서면서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사회구조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 현상의 본질을 ‘단절’이라고 진단한다. ‘단절’은 도시와 농촌, 취업자와 실업자, 중산층과 하층민 사이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쑨 교수는 “80년대 중국의 약소집단은 노약자 병자 장애인에 불과했으나, 90년대 들어 농민·이농(離農)근로자, 실업자 등으로 확대되었다”며 “그 숫자는 8억~9억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쑨 교수는 중국이 개혁개방 20여 년 동안 도시와 농촌이 함께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단절’된 채 도시만 발전하였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호구(戶口)’제도를 통한 거주이전의 제한이었다고 말한다. 1985~90년 사이 1.5%의 농촌인구만이 도시로 이동했다. 그 결과 농촌의 과잉 노동력이 도시로 흡수되지 못하고 농촌에 대거 잔류함으로써, 농민 1인당 평균경지면적이 1.4무(畝·1무는 6.67아르)에 불과, 절대다수의 농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농산물 저가정책도 한몫을 했다.
농촌을 떠난 이농 근로자(중국에서는 이들을 農民工이라 부른다)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학력이 떨어지고 전문기술이 없는 그들은 대부분 제조업의 생산직이나 건설현장의 노동자로 일해, 수입이 낮다. 게다가 호구가 없는 도시지역에서 온갖 불평등을 겪으며 ‘도시하층민’으로 전락했다. 국유기업 ‘샤깡’(下崗·일자리에서 �겨남)근로자들도 하루 아침에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들 약소집단의 구매력 부족으로 중국경제가 ‘내수부진’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농촌경제의 붕괴(이른바 三農문제)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농촌의 향진(鄕鎭)정부는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공무원과 교사의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약소집단에 일자리를 주기 위해 10%가 넘는 고도성장을 유지해야 하지만, 성장할수록 단절은 커지는 ‘고도성장의 패러독스’에 빠져있다고 쑨 교수는 진단한다.
실업문제와 관련, 쑨 교수는 자금·기술집약적 산업 못지않게 노동집약적 산업도 함께 발전시키는 경제발전전략의 조정이 필요하며, 도시화의 진전을 적극 추진, 더욱 많은 취업기회를 제공해야 하다고 말한다. 전문기술학교 등 직업교육 강화도 제안한다.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소득의 분배제도를 다시 세워야 하며, 그 첫번째가 개인소득세의 징수”라고 강조한다.
‘단절’은 중국 내부에서 나온 비판이란 점에서 수년 전 유행했던 ‘중국위협론’이나 ‘중국붕괴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웨이징성(魏京生)·왕단(王丹) 같이 천안문사태 이후 해외로 망명한 지식인 같은 냉소적 시각도 아니다. 오히려 80년대 말 중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TV 다큐멘터리 ‘하상’(河�)처럼, 환부(患部)에 대한 ‘자아비판’이다. 다만 2003년에 출판된 까닭에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의 정책적 변화인 ‘조화(和諧)사회’ 노선을 반영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 ‘단절’의 가장 큰 원인인 정치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부족한 것은, 중국 학자로서의 한계로 보인다. 아울러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중복된다는 점(가령 번역본의 22~26쪽과 108~110쪽이 거의 똑같음)도 눈에 거슬린다.
◆더 읽을 만한 책
겉으로 보이는 중국이 아니라 그 속살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책으로 ‘중국은 가짜다(원서명 The Chinese·홍익출판사)’가 있다.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지(紙)의 중국특파원으로 15년간 근무한 제스퍼 베커(Becker)가 저자이다. 그는 도로변의 높은 건물만 보지 않고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본다. 산시성(山西省) 다자이(大寨)를 찾아간 그는 산시성이 비타민B 부족으로 기형아 출산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류샤오치(劉少奇)가 태어났던 후난성(湖南省)의 농촌지역에는 합법을 가장하여 농민을 수탈하는 ‘현대판 산적’같은 지방관리들이 있다고 고발한다.
르포작가 천구이디와 우춘타오 부부가 2004년 초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펴낸 ‘중국농민조사’는 안휘성 농촌의 빈곤상과 부패를 고발한 책이다. 연 현금 수입이 몇 만원에 불과한 지방의 농민들을 지방 관료들이 잡세 등 각종 명목으로 갈취하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소개한다. 출간 한달만에 당국에 의해 ‘금서’로 묶였으나 해적판과 인터넷을 통해 널리 유포됐다. 프랑스 지식인 기 소르망이 쓴 ‘중국이라는 거짓말(문학세계)’도 1년간의 현지 취재를 통해 경제성장에 가린 중국의 실상을 폭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