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순국 100년> 日 재평가 움직임 확산
연합뉴스 | 입력 2010.03.21 09:12 | 수정 2010.03.21 10:17
"동양평화사상, 東亞공동체 구상과 맥닿아"
(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일본인 데라시타 다케시(寺下武.57)씨는 3개월째 '한국.일본 2천500㎞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데라시타씨가 지난해 12월25일 대장정의 첫발을 뗀 곳은 도호쿠(東北) 지방 미야기(宮城)현이었다.
미야기에 있는 사찰인 다이린지(大林寺)에는 안중근 의사가 생전에 쓴 글씨가 보관돼있다. 데라시타씨는 오는 26일 서거 100년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안 의사 기념관을 향해 6천300리 길을 가고 있다.
일본생활협동조합에서 19년간 근무하며 평화운동을 벌인 시민운동가인 데라시타씨는 안 의사의 평화 의지에 감명받아 지난해 12월 조기 퇴직하자마자 순례에 나섰다고 한다.
데라시타씨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보적인 인사 중에는 안 의사와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사상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 내에서 안 의사에게 먼저 주목한 이들은 오사카가 아니라 도사(土佐)번(현재의 고치현)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안 의사 의거 직후인 1910년 6월에 일왕 암살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된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였다.
체포 당시 고토쿠의 품속에서는 안 의사의 사진과 거사를 칭송한 한시가 발견됐고 그는 1911년 1월 동양평화, 전쟁반대, 일왕 신격화 반대 등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도사번 출신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검찰관이면서도 안 의사에게 감동해 처형 후 사직으로 항의했던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나 안의사의 관선 변호인이었던 미즈노 요시타로(水野吉太郞)가 그들이다.
도사번 출신 법조인들이 1910년께 만주에서 일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도사번은 조슈번(長州藩.야마구치현 등)과 사쓰마번(薩摩藩.규슈 남부)의 동맹을 이끌어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배출하는 등 일본이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가는 길을 여는 데 앞장선 지역.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정작 일본 중앙 정치를 석권한 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조슈번 출신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침략적인 '대동아공영권' 구상으로 치달았다.
조슈번 출신 인사들에 밀려 일본이나 조선에 가지 못하고 변방인 만주를 떠돌던 도사번 출신의 관료들은 블록 경제 등 구상을 담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에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테러리스트'로 기록한 것은 물론 "하필이면 한일합방에 반대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합방을 앞당겼다"고 낮춰 평가했다.
이런 공식 평가에서 조슈번 출신 권력자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아시아보다는 서구를 모방하느라 급급했고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이룬 뒤에는 '미개한' 조선과 중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하지만 도사번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아시아 각국이 대등한 관계 아래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묶여야 한다는 동양평화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일본 진보 세력의 사상적 자양분이 됐다.
창원대 도진순 교수는 21일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과 일본 민주당이 내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서로 맥이 닿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강제합방 100년을 앞두고 최근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안중근 재평가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시민들과 학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한국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이하 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 3월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에서 안 의사의 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유묵(遺墨)과 처형 전 사진 등이 전시돼 일본 시민들을 만났다.
전시회와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과 하얼빈 의거의 의미, '한일합병'의 부당성 등이 다뤄지며 안 의사에 대한 일본 내 재평가 작업도 진행됐다.
역사 문제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정확한 의미에서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국가의 경제와 외교 등을 연구하는 일본 싱크탱크인 ERINA의 미무라 미쓰히로(三村光弘) 박사는 "테러리즘에는 이권이 결합해 있기 마련인데 안 의사는 아무런 이권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신념으로 행동했다"며 "테러리스트보다는 일종의 양심수나 정치범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chungw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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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이충원 특파원 =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일본인 데라시타 다케시(寺下武.57)씨는 3개월째 '한국.일본 2천500㎞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데라시타씨가 지난해 12월25일 대장정의 첫발을 뗀 곳은 도호쿠(東北) 지방 미야기(宮城)현이었다.
미야기에 있는 사찰인 다이린지(大林寺)에는 안중근 의사가 생전에 쓴 글씨가 보관돼있다. 데라시타씨는 오는 26일 서거 100년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안 의사 기념관을 향해 6천300리 길을 가고 있다.
데라시타씨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보적인 인사 중에는 안 의사와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사상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 내에서 안 의사에게 먼저 주목한 이들은 오사카가 아니라 도사(土佐)번(현재의 고치현)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안 의사 의거 직후인 1910년 6월에 일왕 암살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된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였다.
체포 당시 고토쿠의 품속에서는 안 의사의 사진과 거사를 칭송한 한시가 발견됐고 그는 1911년 1월 동양평화, 전쟁반대, 일왕 신격화 반대 등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도사번 출신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검찰관이면서도 안 의사에게 감동해 처형 후 사직으로 항의했던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나 안의사의 관선 변호인이었던 미즈노 요시타로(水野吉太郞)가 그들이다.
도사번 출신 법조인들이 1910년께 만주에서 일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도사번은 조슈번(長州藩.야마구치현 등)과 사쓰마번(薩摩藩.규슈 남부)의 동맹을 이끌어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배출하는 등 일본이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가는 길을 여는 데 앞장선 지역.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정작 일본 중앙 정치를 석권한 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조슈번 출신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이후 침략적인 '대동아공영권' 구상으로 치달았다.
조슈번 출신 인사들에 밀려 일본이나 조선에 가지 못하고 변방인 만주를 떠돌던 도사번 출신의 관료들은 블록 경제 등 구상을 담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에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테러리스트'로 기록한 것은 물론 "하필이면 한일합방에 반대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합방을 앞당겼다"고 낮춰 평가했다.
이런 공식 평가에서 조슈번 출신 권력자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아시아보다는 서구를 모방하느라 급급했고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이룬 뒤에는 '미개한' 조선과 중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하지만 도사번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아시아 각국이 대등한 관계 아래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묶여야 한다는 동양평화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일본 진보 세력의 사상적 자양분이 됐다.
창원대 도진순 교수는 21일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과 일본 민주당이 내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서로 맥이 닿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강제합방 100년을 앞두고 최근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안중근 재평가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시민들과 학자들이 중심이 돼 발족한 '한국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이하 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 3월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에서 안 의사의 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유묵(遺墨)과 처형 전 사진 등이 전시돼 일본 시민들을 만났다.
전시회와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과 하얼빈 의거의 의미, '한일합병'의 부당성 등이 다뤄지며 안 의사에 대한 일본 내 재평가 작업도 진행됐다.
역사 문제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정확한 의미에서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국가의 경제와 외교 등을 연구하는 일본 싱크탱크인 ERINA의 미무라 미쓰히로(三村光弘) 박사는 "테러리즘에는 이권이 결합해 있기 마련인데 안 의사는 아무런 이권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신념으로 행동했다"며 "테러리스트보다는 일종의 양심수나 정치범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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