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설립 10주년 맞는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
"내 처방의 상당수는 불법입니다." 국립암센터 이진수(60) 원장은 의외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나는 최신 학술 연구 결과를 보고 암환자 상황에 맞게 항암제를 골라 쓰는데, 그렇게 하면 건강보험이 정해놓은 기존 항암제 처방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서 불법이라는 딱지를 매깁니다. 환자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한 의사 처방이 불법인 셈이니…. 이래서 암 치료 수준이 발전하겠습니까."
국내 의학계의 항암 치료를 선도해온 국립암센터는 22일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이 원장은 "암 정책이 최신 암 치료 시도를 아예 가로막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가 의료기관 원장의 처방이 불법이라니, 아이러니다.
"건강보험 기준은 수년간 임상시험을 거쳐 특정 암에 효과가 있다고 확정된 항암제만 인정한다. 하지만 국제학술지에는 새로운 항암치료 요법이 계속 나온다. 그걸 참고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다양한 항암제를 섞어 쓰거나 복합 처방하면 기준에 어긋난다고 해서 과잉 진료나 부적절 진료로 판정받는 것이다."
―기준과 다른 처방을 하면 벌금도 내야 하는데.
"환자가 처방이 적절했는지를 따지겠다며 건보공단에 신고를 해서 기준에 벗어난다는 판정을 받으면 이유가 어떻건 무조건 치료비를 물어내야 한다. 나도 몇번 당했다. 그런 꼴 당하기 싫으면 치료 효과가 좋건 나쁘건 건강보험 기준대로 쓰면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환자에게 도움이 되면 처방을 해야지."
―그렇다고 의사 임의대로 항암제를 막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존의 항암제가 별 효과가 없다고 치자. 그런 상황에서 대안 치료법으로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와 있고, 환자가 새로운 치료법을 받기로 동의한다면 합법적인 처방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선진국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년에 걸쳐 효과가 입증된 것만 인정하고 최신 처방을 하지도 못하게 한다. 암환자는 하루가 급한데도 말이다."
―선진국에서는 항암치료를 주로 외래에서 하는데 우리는 아직 입원 치료가 많다.
"입원료가 여관비보다 싸서 그렇다. 6인실에 입원하면 환자가 내는 입원료는 2500원이다. 병원 왔다갔다하는 택시비보다 싸니까 환자들이 병원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