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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鬱陵島)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며 설레는 섬이다. 독도와 함께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다. 더욱이 독도의 영유권 분쟁이 심해지고, 동해의 해양자원이 주목을 받으면서 울릉도는 전략적으로 더욱 중요한 섬이 되고 있다.
여러 차례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동해의 갈라파고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섬이다. 형성시기도 신생대 4기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 제주도는 한라산을 정점으로 방패를 엎어놓은 듯한 순상화산인 반면 울릉도는 섬 전체가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종 모양의 종상화산이다. 이는 두 섬에서 분출한 마그마와 화산 분출 형태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형성한 마그마는 점성이 약해 넓게 퍼진 반면 울릉도는 점성이 강해 우뚝 솟은 것이다.
- ▲ 울릉도는 화산활동에 의해 바다 속에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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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대략 270만~1만 년 전에 해저 화산체가 여러 차례 화산활동을 일으키면서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 화산섬이다. 바닷물이 빠져나간다면 높이 3,000m가 넘는 거대한 원뿔 모양의 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70만 년 전에 화산체의 기저부가 형성되었다. 100만 년에 걸친 휴식기를 거쳐 180만~1만 년 전에 지금의 울릉도 지형 대부분이 형성되었다. 대략 1만 년 전에 울릉도의 화산활동이 다시 폭발적으로 일어나 화구가 함몰되면서 칼데라인 나리분지가 생겨났다. 그래서 식물대의 보고인 평평한 분지가 형성되었다. 분지 위로 용암이 2중 분출하면서 엉덩이 모양의 분석구(噴石丘)인 알봉이 생겨났다. 알봉을 마지막으로 울릉도는 휴지기에 들어갔다. 백두산이 10세기 후반에 대폭발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울릉도도 언제 다시 분출할지 모른다. 현재는 조용히 잠자고 있을 뿐이다.
울릉도의 지질은 현무암, 조면암, 응회암 등이며 섬 전체가 오각형 모습을 하고 있다. 섬이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이다. 이 때문에 농사가 적합지 않아 주민의 절반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 ▲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육지를 형성했다.
- ▲ 이처럼 새빨간 바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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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본토와 137km나 떨어져 있어 육지와 완전히 다른 생태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울릉도를 동해의 갈라파고스라 부른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갈라파고스가 특이한 동물종의 보고인 반면 울릉도는 식물종의 보고라는 점이다.
울릉도의 동물은 주목할 만한 점이 없다. 육지보다 종과 개체수가 아주 적다. 하지만 울릉도는 하나의 식물원이라 할 만큼 다양한 식물종을 보유하고 있다. 조사된 바에 의하면 울릉도에는 향나무·소나무·잣나무·삼나무·동백나무를 비롯한 65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섬개야광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 울릉양지꽃, 울릉강활, 섬자리고, 섬노루귀 등 39종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식물이다.
또한 식물분야에만 6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이는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8호), 대풍령 향나무 자생지(제49호), 태하령 솔송나무·섬잣나무·너도밤나무 군락지(제50호), 도동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 군락지(제51호), 나리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제52호), 성인봉의 원시림(제189호) 등이다.
이처럼 식물종이 다양한 이유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조경수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리만해류에서 분리된 북한한류와 쿠로시오해류에서 분리된 동한난류가 울릉도 근해에서 만난다. 이 때문에 바다에는 많은 어종이 모이는 황금어장이 생기고, 섬에는 특이한 식생대가 형성되었다.
울릉도의 기후는 온난다습한 해양성으로 연평균기온 12℃, 연평균강수량은 1,485mm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는 대표적인 다설 지역이다. 평균적설량이 100cm이며 눈이 많이 내릴 때는 3m 이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적 요인이 식생에 많은 영향을 미쳐 식물종이 다양해진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울릉도의 식물을 보면 대체적으로 잎의 길이가 짧고 두툼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울릉도는 위도상 온대림 지역이지만 난류의 영향으로 400m 이하에는 난대림이, 그 위에는 온대림이 형성돼 있다. 울릉도의 삼림군락은 곰솔군락, 소나무군락, 참식나무군락, 섬잣나무군락, 너도밤나무·마가목군락으로 분류되고 있다.
각 계층의 우세종으로 교목층(喬木層:높이 8m 이상의 나무)은 너도밤나무, 왕고로쇠, 섬피나무, 솔송나무, 섬잣나무 등이 있다. 자목층은 섬딸기·호장근·자금우·송악 등이, 조릿대층에는 섬대 등이 서식하고 있다. 초수층(草樹層)에는 멸가치, 멩이풀, 큰두루미꽃, 공작고사리, 양면고사리, 섬노루귀 등이 자라고 있다.
울릉도에는 섬단풍나무, 섬말나리, 섬벗나무, 섬잣나무, 섬대 등 이름 앞에 ‘섬’자가 붙는 식물이 많다. 너도밤나무·섬대군락은 울릉도가 북한계선이며, 솔송군락은 남한계선이다. 울릉도(鬱陵島)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울울창창한 섬이라는 뜻이다. 심각한 도벌과 인구 증가로 인해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울릉도는 잘 보존해야 할 자연식물원이다.
약탈과 도벌을 견뎌낸 불굴의 섬
울릉도에서는 청동기·철기시대의 고인돌과 승문토기 등이 발견돼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역사시대에 들어서면서 신라시대의 우산국 정벌 등 많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울릉도는 약탈을 많이 당한 섬이었다. 심지어 해적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나라에서 거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 고려 때부터 울창한 나무 도벌… 39종의 특이식물과 6종의 천연기념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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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은 도벌로 이어졌다. 울릉도는 지키는 병사도 없는 울창한 섬이었기 때문에 수없는 도벌이 행해졌다. 1270년 고려와 몽고의 강화 이후, 고려는 몽고의 대목(大木) 공납을 충족시키기 위해 울릉도의 나무를 베어 바쳤다. 이 벌목은 고려의 요청으로 곧 중단되었지만 대규모의 벌목으로 이에 동원된 본토민과 이주해 있던 현지민의 고초가 매우 심했다.
조선시대에는 왜선들이 이곳에 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고, 귀한 나무들을 무수히 도벌해갔기 때문에 ‘왜선창’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했다. 임진왜란 후 조선왕조의 통치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혹은 의죽도(磯竹島)로, 독도를 송도(松島)라 부르면서 공공연히 고기를 잡거나 나무를 도벌해갔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나무를 마구잡이로 도벌해가자 조선은 공도정책을 수정해 고종 19년(1882)에 개척령을 반포하고 이민을 장려했다. 고종이 러시아공관에 거주하고 있을 때(아관파천·1896~1897)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인 브린너가 1896년 9월 9일 조선과 조약을 체결해 압록강, 두만강 연안과 울릉도의 벌채권을 획득했다. 벌목권의 시한은 무려 20년이나 되었으며, 관세도 면제됐다.
- ▲ 맑은 날의 울릉도는 청정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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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도벌이 심해지자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자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한 건’을 반포하고 관보에 게재한 후 울릉도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정부는 1903년 4월 심흥택을 군수로 파견해 일본인들의 도벌을 금지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일본인 이주어촌을 설치하는 등 침략을 강화했다. 이후 한일병합이 되자 일본의 울릉도 도벌은 공공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울릉도의 삼림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도벌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울릉도가 얼마나 삼림자원이 많았던 곳인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멸종 위기의 섬개야광나무
앞서 말한 대로 울릉도에는 다양한 식물종이 있지만 그를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대표적인 특이종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필자가 울릉도를 탐방한 지난 여름은 지루한 장마가 이어져 맑은 날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울릉도에 드나드는 쾌속선도 계속 결항돼 여러 번 일정을 변경한 끝에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울릉도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멀리 동해의 섬이라 설레는 마음은 여전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딸아이와 함께 섬개야광나무를 찾아갔다.
섬개야광나무는 도동 오른편 송곳산에 자생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오르기 어려웠으므로 나무를 심어놓았다는 울릉초등학교를 관광안내소에서 물어보았다. 울릉도는 나리분지를 제외하고는 평지가 거의 없다. 울릉도의 주요 관문인 도동도 15도 정도의 가파른 골짜기에 울릉군청을 비롯한 주요 시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골짜기의 폭도 넓은 곳이 1km 정도로 매우 좁아 거주하기에 불편하다.
- ▲ 1 울릉초등학교의 섬개야광나무. 비를 맞아 청초하다. 2 섬개야광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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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골목을 따라 찾아간 울릉초등학교는 방학 중이라 조용했다. 애써 찾아보니 화단에 섬개야광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 나무의 꽃은 작은 배꽃처럼 생겼으며 앙증맞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 사이로 분홍색의 수술이 곤충을 부른다. 이름 속에 ‘야광(夜光)’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 정말 밤에 빛을 발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야광은 아니다. 섬개야광나무는 붉은색의 작은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가 달빛에 보면 빛이 난다고 하여 ‘야광’이라는 말이 붙었다 한다.
섬개야광나무는 울릉도의 도동과 송곳산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낙엽활엽관목이다. 높이는 1.5m 정도다. 수피는 다소 잿빛이 도는 자주색이며 어린 가지에 털이 있다. 잎은 호생하고 난형, 타원형 또는 도란형으로 양 끝이 좁아진다. 꽃은 5~6월에 백색으로 피고 수술은 짙은 분홍 또는 흑자색이다. 가을에 붉은 열매가 열린다. 과육을 제거한 후 종자를 저온·습윤 처리하면 발아율이 양호하다. 대부분 파종 1년째 봄에 발아한다. 채종 적기가 늦었거나 종자 저장이 부적당하면 2년째 봄에 발아하기도 한다.
섬개야광나무는 맞은편 울릉중학교에도 몇 그루가 있었다. 입도 첫날 비가 와서 송곳산에 오르지 못하고 울릉군청에 찾아갔더니 그곳에 섬개야광나무가 자생하고 있기는 했지만 개체수가 워낙 적어 찾기 어려울 것이라 하였다. 마침 다음 날은 하늘이 맑게 갰다.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고 송곳산에 올랐다.
해발 300m 정도의 송곳산은 말 그대로 가팔랐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는 녹색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위쪽 능선으로 오르니 집 한 채가 있었다. 무허가 주택으로 보이는 집 주변은 여러 시설물과 쓰레기 등으로 아주 지저분했고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집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자생하고 있는 섬개야광나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오른쪽 사면은 낭떠러지여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시간 나무 찾기를 한 끝에 결국 포기하고 내려오던 중 왼편 사면에 누군가 심어놓은 듯한 섬개야광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나마 생육상태도 아주 좋지 않아 거의 방치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송곳산을 내려오면서 관계기관의 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보호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자생종은 곧 멸종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섬개야광나무 씨앗의 발아율이 좋아 일부 원예원에서 기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종이 보존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찾을 수 없었던 섬댕강나무
섬개야광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댕강나무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군가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는 것도 볼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웠다. 현지 사람들도 최근에는 본 일이 없다고 하므로 아마 멸종단계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 1 멸종 위기에 처한 섬댕강나무. <사진 울릉군청> 2 울릉도에는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 섬댕강나무는 울릉도의 바위틈에 자라는 낙엽관목으로 높이 80cm에 달한다. 원줄기에 6개의 홈이 있으며 소지는 붉은빛이 돌고 털이 없다.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이다. 연한 황색의 꽃이 5월에 핀다. 종자와 삽목으로 증식시킨다.
섬댕강나무의 멸종 위기는 사람들의 채취보다는 자연적 현상이 원인이 아닌가 추정된다. 본래 우세종이 아닌 데다 자연환경이 바뀌면서 개체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인공적 보존의 한계를 실감하는 경우다.
비가 잦아든 울릉도의 밤바다는 매우 고독했지만 아름다웠다. 깊은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한 점 섬은 그 아름다움의 결정체였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 중앙대에서 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문화일보 신춘문예(시)에 당선됐다. 중앙대·한서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김규 wor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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