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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바다를 보며 한미연합사를 생각한다

화이트보스 2010. 4. 5. 11:27

백령도 바다를 보며 한미연합사를 생각한다

  • 김희상 예비역 육군 중장·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입력 : 2010.04.04 22:57 / 수정 : 2010.04.05 01:03

김희상 예비역 육군 중장·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원래 주변 강대국과 연대하는 것은 약소국 생존의 보편적 지혜다. 과거 조선(朝鮮)은 명(明)을 끌어들여 왜(倭)를 막아냈지만 그런 도움을 얻지 못했던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어야 했다. 우리도 6·25 때는 미국의 도움으로 중공(中共)을 업은 북한의 침략을 분쇄했고,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라는 한·미 군사동맹체제로 안정과 평화를 지켜 오고 있다. 바로 그 '성공'을 보장하고 있는 핵심적 기구요 동맹의 현실체가 '한미연합사'다. 연합사가 갖는 위엄과 억지력이 한강의 기적, 오늘의 대한민국을 뒷받침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새삼 연합사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이번 사태가 연합사 해체 후에 발생했다면 한국 사회와 경제에 주는 영향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려하는 대로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나 어뢰에 피격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것은 단순히 김정일의 무력도발 의지가 여전히 강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북한의 도발이 점차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미연합사 체제는 이런 위협에 대한 핵심적 억지력이자 가장 값싸고 효율성이 높은 안보체제다.

북한 핵위협이나 팽창주의적 주변국의 점증하는 위협 등 한국 안보의 핵심적 위협들에 대한 가장 현실적 대처수단이 연합사이기도 하다. 장차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엄청난 정치·경제·군사적 소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고 바로 연합사가 그 통로이자 관리기구가 될 수 있다. 통일 후에도 상당기간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는 데 연합사만큼 효용성이 높은 기구는 없다.

이제 북한의 핵이 기정사실이 되고 연합사까지 해체된 다음에 북한의 도발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아예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도박에 매달릴 수도 있다는 것이 배제할 수 없는 예측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여기에 적당히 타협하려 들면 우리의 삶은 북한에 끌려가게 된다. 이번 사태는 바로 그런 미래를 엿보는 북한의 시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최근 중국일본에 부는 민족주의 바람 속에서 동북아 안보질서는 물밑에서 흔들리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해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까지를 생각하면 머지않아 한반도에 안보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 싫든 좋든 남과 북의 운명을 가름하게 될 그날을 한미연합사 없이 맞게 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구두(口頭) 약속이나 문서상의 동맹이 아닌 그 이상의, 오늘같이 연합사로 연결된 '구조적인 동맹 체제'가 필요하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우리가 연합사 해체 문제를 서둘러 재검토해야 한다는 경종과도 같다. 한·미 양국에 그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기회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면서 '서두르면 부담만 클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창조적 미래를 경영하자면 때로는 다소 모험적 투자도 필요한 법이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의 안보와 미래를 관리할 핵심 기구를 오래도록 무기력한 '해체 과정'에 버려둔다는 것이 어떻게 현명한 일이겠는가.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든 가급적 빨리 통일까지를 내다보는 대(大)전략 차원에서 한·미 간에 서로 총체적이고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연합사 체제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천안함 침몰로 우리는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을 되돌아보고 결단할 수 있다면 천안함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