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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달된 딸과 살 집 사려고 천안함 배탔는데…”

화이트보스 2010. 4. 7. 09:50

넉달된 딸과 살 집 사려고 천안함 배탔는데…”

실종 부사관들 안타까운 사연
대학 휴학하고 어머니에 월급 부쳤던 효자도…
실종 46명중 30명 가족생계 짊어진 '직업군인'

한겨레 | 입력 2010.04.07 08:40 | 수정 2010.04.07 08:51

 




[한겨레]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최정환(33) 중사는 지난해 적금과 예금을 모두 깼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해군에 입대해 13년째, 최 중사의 통장에는 깨알같이 쌓인 돈이 5000만원이나 됐다. 직업군인으로 1년에 절반을 배를 타도 한 달에 받는 월급은 200만원 안팎이었다. 이나마도 배를 탔기 때문에 받은 수당을 합친 것이라, 최 중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배에 올랐다. 최 중사는 이렇게 모은 돈을 아버지 최근해(66)씨와 어머니 김재영(62)씨의 농가주택을 짓는 데 성큼 내밀었다.




4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도 그런 남편의 결정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는 남편이 위험을 무릅쓴 대가로 받아온 월급을 더 쪼개고 아꼈다.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최 중사의 생존을 손꼽아 기다리는 장모는 "부모님 모시려 가진 돈 다 썼으니, 이제부터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돈 열심히 모아 아파트도 사고 재미나게 살 거라고 했는데…"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최 중사는 이번 출항 전 아내에게 "이게 마지막이다. 한 번만 더 배를 타겠다"며 천안함에 올랐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육상 근무 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둔 터였다. "태어난 지 갓 네 달 된 딸 우영이가 보고 싶어 안 되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배 위에서도 최 중사는 근무를 마친 뒤 화상전화로 막 꾸물거리기 시작한 우영이를 보며 파도에 지친 심신을 달랬다. 천안함이 침몰했던 지난달 26일 밤부터 우영이를 찾는 최 중사의 화상전화는 끊겼다.

천안함 실종자 46명 가운데 30명이 최 중사처럼 군복무가 생업인 부사관들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온몸에 짊어진 가장도 있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일찍 군인의 길을 택한 사회 새내기들도 있었다. 성실히 살아오다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한 이들의 사연이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심영빈 하사는 객지를 떠돌며 일했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입대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휴학계를 냈다. 심 하사는 월급을 떼어내 강원 동해시에 홀로 있는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부쳤던 효자였다. 심 하사의 아버지는 "뒷바라지도 못해줬던 영빈이가 오히려 꼬박꼬박 집으로 돈을 부쳐줘 항상 미안했는데, 이제 그런 후회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애통해했다.

유일하게 주검이 발견된 고 남기훈 상사도 세 아이를 키우며 아버지의 병치료도 맡아 넉넉지 않은 살림을 살았다. 남 상사의 아버지가 당뇨에 신장 투석까지 받고 있어 얼마 전엔 남 상사가 치료비 마련을 위해 2000만원짜리 적금을 헐기도 했다.

문영욱 하사는 2007년 9월 뇌졸중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6개월 만에 해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잃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지만, 형제도 없이 혈혈단신이던 문 하사는 학비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단기 하사관을 지원했다. 문 하사의 외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만 하던 영욱이가 '살길을 찾겠다'며 군에 입대한 지 1년 만에 이런 사고를 당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에서 4년6개월 동안 단기 하사관으로 복무하다 중사로 제대한 민아무개씨는 "대한민국 하사관들 상당수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 꿋꿋이 군 생활을 했던 이들이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평택/홍석재 송채경화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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