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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최틀러'

화이트보스 2010. 4. 12. 18:31

돌아온 '최틀러'

입력 : 2010.04.11 23:01 / 수정 : 2010.04.12 00:30

고(高)환율 논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중경기획재정부 1차관이 20개월 만에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화려하게 컴백했습니다. 정부가 앞으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과 최 수석의 정책적 스승인 강만수 경제특보가 힘을 얻게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모두 맞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다소 거창한 것 같지만, 저는 최 수석의 기용을 한국 경제정책사(史)적인 측면에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초점은 과거 중요한 시점에 원화의 약세를 유도, 시비끝에 현직에서 물러났던 최 수석의 정책이 과연 옳았는지, 아니면 틀렸는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 수석의 정책은 크게 보아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적어도 그를 경질한 것은 잘못된 처사였다는 말입니다.

고환율 논란이 컸던 MB정권 초기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당시 원화 환율은 연초 달러당 940원대(월간 기준)에서 급격히 상승, 5월 한때 1030원대까지 올라갑니다. 물론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최중경 차관 라인이 추진한 고환율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비판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유가가 배럴당 136달러까지 치솟아 서민과 중산층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결국 '부자(富者)정권'이란 야당의 공세에 무릎 꿇은 정부는 강 장관 대신 속죄양으로 최 차관을 경질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원화 환율은 단숨에 1400원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반면, 유가는 그해 연말엔 배럴당 37달러까지 폭락했습니다. 고환율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판은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최 차관이 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고환율 정책은 한국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높여 우리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환율은 무조건 낮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제 기억에 우리는 역사상 두 차례의 원화 강세 시대를 만끽했습니다. 첫 번째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원화 환율이 달러당 800원대로 떨어지자 해외주재원 부인들은 "(달러가) 너무 싸다"며 단체쇼핑을 하러 몰려다녔습니다. YS 정부가 국민소득 1만달러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위해 저환율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당해 달러가 고갈되자 이번엔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부 후반부였습니다. 원화가 900원대까지 떨어지자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태국으로, 골프여행을 떠났습니다. 盧정부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었다고 선전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부자가 된 듯이 말이죠. 그러다가 역시 MB 정부 들어 곧바로 금융위기를 맞았습니다.

최중경 경제수석은 별명이 '최틀러'입니다. 최중경과 히틀러의 합성어죠. 2003~2005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시절에 "최악의 상황이면 한국은행의 발권력도 동원할 수 있다"며 환율방어에 나섰다 얻은 별명입니다. 당시에도 환율 방어를 위해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아 공직에서 쫓겨날 뻔했다가 겨우 세계은행 이사로 전보됐었죠. 그만큼 소신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강한 경제관료입니다. 그의 소신이 정권 후반부의 한국경제를 어떻게 방향 지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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