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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지 못한 중국

화이트보스 2010. 5. 10. 14:54

정의롭지 못한 중국 [중앙일보]

2010.05.10 00:01 입력 / 2010.05.10 09:45 수정

미국과 중국의 G2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G는 그룹(Group)의 약자다. 그러나 인류를 이끌어갈 지도자 국가가 있어야 한다면 G는 ‘위대한(Great)’의 약자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나라’란 무엇인가. 핵무기와 인구가 많고 국민총생산(GNP)과 영토만 크면 위대한 나라인가. 미국인들은 흔히 “great America”라고 한다. 무슨 자신이 있어 그렇게 부르나. 많은 세계인은 왜 거부감을 갖지 않는가.

1776년 인류 역사에 등장한 이래 미국도 그늘의 역사를 많이 남겼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학살하고 흑인 노예를 끌어다 백악관을 짓고 산업을 일으켰다. 식민지 역사에 가담했고 국익을 위해 일부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쿠바 피그만 침공(1961년)처럼 정권을 뒤집으려 타국의 주권을 유린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편향된 정책으로 중동 불안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미국은 빛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미국의 건국은 프랑스 혁명(1789년)을 가져왔고 이런 변화들이 봉건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미국은 노예를 해방(1863년)하고 146년 후에는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은 히틀러의 폭압과 일본의 군국주의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구해냈다. 전후에는 120억 달러의 마셜 플랜으로 유럽을 부흥시켰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1948~49)하자 미국은 역사상 최대의 공수작전으로 베를린 시민을 살려냈다.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미국은 5만4000여 명의 피로 남한을 지켜냈다. 미국이 위대한 건 정의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그들은 인류문명의 진보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등장했다. 돌이켜보면 그 거대한 아시아 인구가 공산주의를 택한 것은 소련·동유럽처럼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은 것이었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1966~76)은 퇴보의 클라이맥스였다. 극좌사회주의라는 차가운 기계가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마구 헤집어 놓은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인 잘못은 1950년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외치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참전이 없었다면 많은 이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며 한반도는 시장경제·민주체제로 통일됐을 것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일본을 개조시켰다.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미국과 통일한국은 중국에 개혁·개방의 효율적인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미래를 위한다면 역사의 역산(逆算)에만 머물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낡아서 해져버린 역사의 끝자락을 중국 공산당이 여전히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이나 반(反)테러 같은 국제법적 가치를 중국이 얼마나 존중하는지 국제사회는 의심한다. 국제규범에 따르면 테러리스트에겐 어떤 보호도 제공해선 안 된다. 중국의 옆 동네에서 대규모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은 유력한 피의자로 쫓기고 있다. 북한은 부인하지만 정황증거로 볼 때 북한의 소행은 상식이다.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일원이라면 이런 정황증거를 중시하면서 일단 피의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 지도부는 그런 피의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저녁을 차려주고 선물 보따리를 쥐어 보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김정일 방중은 “내부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내부문제도 국제사회의 상식과 순리에 맞춰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 이끌어야 한다. 이끌지는 못할망정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해쳐서야 되겠는가. 김정일이 웃으면서 요란스럽게 베이징을 다녀감으로써 앞으로 국제사회의 김정일 응징은 많은 어려움을 안게 됐다. 중국의 이번 행동은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미국처럼 “대체로 역사의 정의 편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인권이나 반(反)테러 같은 정의로운 가치인가, 그래서 위대한 국가인가. 아니면 낡고 해진 이념의 잘못된 혈맹인가.

김진 논설위원 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