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유전자 검사가 좌우

화이트보스 2010. 5. 25. 14:17

결혼도 입사도… 이젠 유전자 검사가 좌우?

백승재 기자 whitesj@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개인질병 정보 손쉽게 예측하는 '유전자 혁명' 시대 성큼
분석 비용 최소 300달러, 2주면 검사 결과 나와…
"늘어나는 유전자 정보에 어떻게 대응하나" 세계 각국서 고민

지난달 말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에 파멜라 핑크(Fink·39)라는 여성이 복직 신청서를 냈다. 그는 "엠엑스(MX)에너지가 '유전자 차별'로 나를 해고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유방암 가족력이 있었던 핑크는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을 의심해 스스로 유전자 검사를 했으며, 그 결과 'BRCA2'라는 유방암 관련 유전자를 가진 것을 확인했다. 고민 끝에 그는 지난해 유방 절제 수술을 받고 회사에 이를 통보했다. 그러자 엠엑스에너지는 그를 곧 해고했다. 핑크는 "그동안의 인사 고과와 업무상 장점 등을 갖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전자를 통해 개인의 질병이나 신체적 특징 정보를 분석하는‘유전자 혁명’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에서 DNA 정보를 분석하는 모습. /서울대 바이오유전체의학연구소 제공
유전자를 통해 개인의 질병·신체적 특징 정보를 분석하는 '유전자 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가격과 분석 기간이 급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DNA 내 30억쌍의 염기서열에 유전자를 담고 있는데, 2000년에는 수천억원에 달했던 분석 비용이 최근 수천만원대로 떨어졌다.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컴퓨터 성능이 크게 발전한 덕분이다.

스테판 퀘이크(Quake) 스탠퍼드대 교수는 "현재 약 4주 동안 5만달러(약 6100만원)면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비용은 올 연말에는 1만달러(약 1200만원)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전자 검사가 빠르게 보편화하고 있다. 이미 각종 의료시설은 유전자 검사를 대부분 제공하고 있다. 핑크 역시 미국 예일 암센터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질병 관련 유전자만 일부 분석해 비용을 낮춘 개인 소비자용 유전자 검사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출산 전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질병이나 장애 우려가 있으면 지레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달 미국 패스웨이 지노믹스(Pathway genomics)사가 약 400달러(약 49만원)에 유전자 검사를 해주겠다고 나서자, 미국 식품의약안전청(FDA)이 급제동을 건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스티븐 설즈버그(Salzberg) 메릴랜드대 교수는 "제동은 걸렸지만 더 이상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패스웨이 지노믹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미국에 잇따르고 있고, 국내에서도 생명공학업체 마크로젠이 3~4일 만에 1000달러 이하의 비용으로 인간 유전자를 분석하는, 이른바 '3세대 유전자 분석 장비'를 2년 전부터 개발 중이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유전자 정보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세계 각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어떤 유전자 검사를 어떨 때 허락해야 할지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태아에 대해 시행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질환을 63종에서 139종으로 두배 넘게 늘렸다. 성인까지 고려하면 어떤 대상에 얼마나 많은 유전자 검사를 허용할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상'과 다른 인간은 피하겠다는 사람들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며 "질병 치료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발전시키되 결혼·출산 등에 부정적으로 활용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