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그베 리 초대 유엔총장 유품 기증한 손자 브라츠 씨
“유엔軍파병 주도한 할아버지의 유품, 한국이 기억해주길…”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막 시작된 미소 양 진영 간 냉전 속에서 미국이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유엔을 무대로 벌였던 외교전의 중심에는 노르웨이 외교장관 출신의 트뤼그베 리 초대 유엔 사무총장(1896∼1968)이 있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브라츠 씨는 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장녀인 어머니가 큰아들인 내게 준 이 유물들은 한국인의 관심 속에 남아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유엔에서 물러난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소련과 갈등을 겪었지만 유엔군의 한국 파병 결정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사진첩-물잔 등 30점 기증 1951년 휴전협상 촉구한 노르웨이 신문 스크랩 눈길 기증품 중에는 리 총장의 손때가 묻은 담뱃갑과 티스푼, 촛대, 은제 물잔이 포함됐다. 그의 고뇌가 담긴 저서 4권과 앨범, 신문 스크랩북 3권도 있다. 리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스웨덴 출신 후임자 다그 함마르셸드 사무총장에게 한 말로, 초강대국의 경쟁구도에서 평화 유지라는 책무와 제한된 실권 사이에서 고민하던 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리 총장의 빛바랜 사진첩과 스크랩에서 ‘꼬마 브라츠’의 모습도 눈에 띈다. 6·25전쟁 발발 1년이 되는 1951년 6월 25일자 노르웨이 일간지는 지루한 공방전에 빠진 6·25전쟁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유엔 주재 소련대사인 야코프) 말리크, 휴전협상 제의’라는 큰 제목 아래 ‘유엔 사무총장, 해당국에 휴전협상 촉구’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여기에 꼬마 브라츠가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노르웨이 공항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실렸다. ‘죽느냐 사느냐’ 등 기증된 책 4권은 대부분 리 총장이 퇴임 후 노르웨이에서 집필한 것이다. 브라츠 씨는 “3개월쯤 할아버지와 같이 지냈는데, 하루 10시간 이상 집필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왜 저렇게 오래 일할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방문해 책 쓰기를 도왔다”고 회고했다. 리 총장의 유물이 한국에 기증된 것은 일종의 운명이었다. 리 총장은 끝내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당시 언론은 “(리 총장이 한국 방문을) 시도했으나, 유엔군 참전을 이끌어낸 그를 비판하는 소련 때문에 무위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리 가문의 한국 인연은 2대를 넘어 증손자 때 더 깊어졌다. 증손자인 옌스 브라츠 씨(28)는 몇 년 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판문점 등을 방문한 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연세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 공부를 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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