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안함 감사 결과 발표는 지난 3월 26일 밤에 일어났던 천안함 침몰사건 그 자체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천안함 함장→제2함대사령부→해군작전사령부→합동참모본부→국방장관→청와대'로 이어지는 보고 라인에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있는 것 같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감사 결과에는 최하류 국가의 부패 군대에서나 상상해볼 수 있는 요소가 다 들어 있었다. 조작 보고, 삭제(은폐) 보고, 허위 보고, 왜곡 보고, 지연 보고, 음주 보고….
이 군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인가. 도대체 어떤 전통을 이어받은 군대이기에, 누구로부터 신성한 국가방위의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누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군대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당일 천안함 인근에 있었던 속초함이 "북한 신형 반(半)잠수정인 것 같다"고 보고했으나 제2함대 사령부가 '새떼'로 바꿔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는 대목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155마일 휴전선 철책에 적 침투가 분명해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도 혹시 '멧돼지'의 소행으로 바꿔서 보고하는 일은 없는가.
우리에게 안보의 제1의 적은 김정일의 호전적 기질일 수도 있고, 북한 내부의 정정불안일 수도 있고,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일 수도 있고, 그들의 광적인 핵무기 개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우리 군 지휘부의 '거짓말'보다 더 무서운 안보의 적은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천안함이 북의 어뢰를 맞은 그날 밤 청와대 지하벙커의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온통 엉터리 보고서를 손에 들고 비상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우리 군이 초동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면 이거야말로 우리 안보의 가장 큰 구멍이다.
이런 일에 대해 엊그제 감사원은 군 수뇌부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사원의 이번 발표 내용만으로도 관련된 군 수뇌부들은 군형법 제35조(적전 근무태만), 군형법 제38조(거짓 명령·통보·보고)를 벗어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건만 어떻게 가벼운 인사조치로 끝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군법회의 규칙에 근거해 따져볼 때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현행범'은 아닌가.
사병으로 군 복무를 했을 대부분 국민은 지금도 '영창(營倉)' '남한산성'이란 말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기분이 스산해진다. 심지어 한겨울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군기확립 차원에서 영창에 갈 때가 있었다. "군의 사기(士氣)를 고려해 형사처벌은 말자"는 사람이 있는가. 지위고하를 막론한 신상필벌의 서슬 푸름을 세우고, 군 기강을 확립할 때 비로소 사기진작도 가능해진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된다.
미군의 군사재판법 제107조(거짓 진술)에는 "누구든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를 속일 목적으로 거짓 기록·답변·규정·명령·문서·진술을 실행했다면 군법회의(court-martial)가 정하는 바에 따라 처벌받는다"고 돼 있다. 이런 범법자는 불명예제대, 봉급과 수당의 몰수, 징역 5년 이하에 처하도록 돼 있다. 영국 군법도 마찬가지다.
맥아더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당시 그는 천안함 침몰 때 우리 군의 지휘관들처럼 '거짓말하는 지휘관'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