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신라 박혁거세 건국신화 밝혀지나

화이트보스 2010. 6. 18. 14:56

신라 박혁거세 건국신화 밝혀지나

매일경제 | 입력 2010.06.18 14:39

 




경주평야에서 신라 건국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2000여 년 전 목관묘(木棺墓)가 처음 발굴됐다.

무덤은 그리 크지 않지만 수준 높은 유물도 함께 발견돼 수장급 인물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한 시기의 무덤이어서 관심을 끈다.

↑ 경북 경주시 탑동 21-3ㆍ4번지에서 최근 발굴된 신라 건국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2000년 전 목관묘 모습. 동검, 철검 등 수준 높은 유물도 함께 발굴됐다. <사진 제공=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단은 최근 경주평야 내 탑동 21-3ㆍ4 소규모 단독주택 신축 예정지 790㎡를 발굴 조사한 결과, 목재가 자연 탄화하는 과정에서 숯처럼 변한 목관의 흔적과 함께 옻칠을 입힌 나무 칼집에 동검(銅劍)이나 철검을 끼운 칠초동검(漆鎖銅劍)과 칠초철검(漆鎖鐵劍)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목관을 묻은 묘광(墓壙ㆍ무덤구덩이)은 평면 말각장방형으로, 동서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했으며 크기는 길이 296㎝, 너비 144㎝, 잔존 깊이 49㎝다. 목관의 평면 형태는 'ㅍ'자형, 크기는 길이 196㎝, 너비 84㎝로 나타났다.

목관 내부에서 칠초동검과 칠초철검, 칼자루 끝 장식인 검파두식(劍把頭飾), 청동팔찌, 목걸이, 그리고 시신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칠기 부채 등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목관묘는 당시 보편적인 무덤 양식이었다.

신라 고고학 전공인 윤형원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실장은 "지금까지 조양동 유적, 사라리 유적 등 주로 경주지역 외곽에서만 확인돼온 수장급 묘가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경주 시내에서 나온 무덤 가운데 가장 온전하면서 빠른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고고학계에서는 신라 중심지에서 확실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자 태동지가 사라리 130호분이나 조양동 38호분 같은 대형 목관묘가 발견된 경주 외곽 지역이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기원전 57년에 경주 일대 6촌(六村)의 촌장이 합의 추대하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신라를 건국했다.

[이향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