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중국産… 뒤에선 한국産
쿠쿠 밥솥·삼성 애니콜·LG TV 찾는 손님 많아… 한국제품 명품, 부르는게 값
본지가 18일 입수한 동영상에 따르면 신의주 채하시장 매대(좌판)를 점령한 것은 중국산 제품이다. 플라스틱 대야, 사기그릇, 수저세트, 보온병, 화장품 같은 잡화류에서 선풍기, 밥솥, 오토바이 헬멧에 이르기까지 중국산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매대 뒤에선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동영상을 제공한 북한 내부 소식통은 18일 "상인들이 매대에선 중국산을 팔지만 매대 뒤에는 남조선 제품을 가져다 놓고 판다"며 "밥솥은 쿠쿠, 손전화(휴대전화)는 삼성 애니콜, 텔레비전은 LG 등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남조선 의류는 상표를 뗀 채 들여오는데도 중상류층은 중국산보다 남조선 옷을 찾는다"며 "압록강 건너 중국 단둥(丹東)엔 남조선 제품만 도매하는 거대 시장까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다른 시장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 청진의 수남시장에서 화장품 장사를 하다 작년 탈북한 이경실(가명)씨는 "매대엔 중국산 화장품을 진열해놓고 손님들한테는 '남조선 화장품도 있다'며 호객하는 수법이 가장 일반적"이라며 "손님이 남조선 화장품을 찾으면 매대 아래서 꺼내주거나 시장 주변에 마련해둔 물품 보관소로 데려가 판다"고 했다.
시장 상인들이 한국 제품을 파는 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씨는 "중국산의 경우 판매가가 대체로 정해져 있고 아주마이(아줌마)들도 깎으려 들지만 남조선 제품은 흥정도 필요없고 부르는 게 값"이라며 "북한 시장에서 남조선 제품은 명품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한국 영화 DVD나 음악 CD도 비슷한 방식으로 팔려나간다. 북한 상인들은 좌판에는 북한 영화 CD와 북한 화면반주음악(뮤직비디오) CD를 올려놓지만 손님들이 다가가면 작은 목소리로 "남조선 최신 드라마 '대장금' 있어요. 미국 격술(액션)영화도 있어요"라며 호객을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