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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최종 보고서, 국민 신뢰 얻는 출발점 돼야기사 100자평(43) 

화이트보스 2010. 9. 14. 15:27

천안함 최종 보고서, 국민 신뢰 얻는 출발점 돼야

입력 : 2010.09.13 23:09 / 수정 : 2010.09.13 23:11

천안함 국제 민·군합동조사단은 13일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의 최종보고서 격인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 공개했다. 보고서는 "천안함은 북한 잠수함이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제 CHT-02D 음향유도어뢰의 수중(水中) 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선체(船體)가 절단돼 침몰했다"는 5월 20일 합조단 발표를 재확인했다. 보고서는 "한·미 양국의 모의실험 결과 수심 7m에서 TNT 300~360㎏ 규모의 폭약이 폭발했을 때 천안함과 같은 절단면과 선체 손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하는 등 5월 발표 때보다 한층 구체적이고 상세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반면 일각의 좌초설에 대해선 "(좌초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드는) 한쪽으로 휘어진 우현 프로펠러의 변형 상태를 분석한 결과 (중립국인) 스웨덴 조사팀도 좌초로는 일어날 수 없고 프로펠러의 갑작스러운 정지와 추진축의 밀림 등에 따른 관성력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기뢰 폭침 가능성에 관해 "여러 가지 기뢰 가운데 비접촉식 계류기뢰만이 어뢰와 같은 파괴현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사고 해역의 조류가 3~5노트로 강한 데다 깊이가 47m, 조수 간만의 차이도 4m 이상이어서 계류기뢰의 위치 고정이나 (버블 효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적정 수심의 유지가 어려워 이 기뢰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했다. 보고서는 '다른 선박과의 충돌 가능성'은 "사건 당시 천안함 근처 해역에선 활동한 선박이 없고, 천안함 선체에 충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접촉 흔적이나 잔류물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 보고서에 대해 어뢰의 폭약성분이 천안함 선체에서만 발견되고 어뢰추진체에서는 나오지 않은 점, 어뢰추진체가 북한산(産)임을 밝혀줄 카탈로그가 공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고 공세를 폈다.

5월 합조단 발표 때만 해도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응답이 70%를 넘었으나 7월 서울대·갤럽 조사에서는 국민의 70% 가까이가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믿지 않거나 반신반의한다고 응답할 정도로 국민의 '천안함 불신'은 심각하다. 어떤 과학적 조사도 사건이나 사고의 전(全) 과정을 100% 재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조사단에 여러 외국 전문가를 포함시키고 군 주도가 아닌 민·군 합동조사를 진행했는데도 국민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진 것은 정부의 초기 접근이 정치적으로 무신경(無神經)했고, 군의 세부 사항에 대한 잇따른 발표 실수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한 탓이 크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정치권의 야당과 일부 이념적 사회단체는 이 사건을 북의 무모한 도발로 보기보다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10년 동안 내려온 대북(對北) 햇볕정책을 뒤집거나 동결(凍結)시킨 것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판단한 게 사실이다. 정부가 이런 고정관념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조사 결과에 정치적·이념적 색깔이 덧씌워지지 않도록 하려면 조사 결과의 발표 시기와 발표 방법 선택에 몇배 신중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은 피해야 마땅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또한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선 어떤 작은 잘못도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의도성(意圖性) 있는 고의(故意)'로 비쳐 공연한 의혹을 부르고 일부 사람들은 그 실수를 자기들이 믿고 있는 특정한 결론을 합리화·정당화시키는 근거로 활용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군은 천안함 피격시점과 폭침 장면을 담은 열영상 감시장비(TOD) 필름의 존재 여부에 대해 오락가락을 되풀이하고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 어뢰의 설계도라고 공개했던 것이 북한의 다른 어뢰 설계도로 밝혀지는 어이없는 짓을 계속했다. 이것이 일부 인사가 의도적으로 뿌린 불씨에 불이 붙도록 만들었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보고는 일반 국민의 상식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각 분과(分科) 과학의 전문 지식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난삽한 내용을 국민에게 날것으로 내놓기 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검증하도록 하는 신뢰 보강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 단계를 생략하고 일반 국민이 이해 불가능한 보고서를 그냥 발표함으로써 조사단 발표에 대한 신뢰를 결정하는 여론 형성과정에서 일부의 선동적 주장이 합리적 주장을 딛고 놀 운동장을 마련해 준 셈이 돼 버렸다.

정부의 무신경과 여론 결정 요인에 대한 무지(無知), 군의 무사려(無思慮)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두 번 열리고 활동을 마감한 국회 천안함조사특위를 즉시 재가동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이 최종보고서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각계의 최고 전문가를 총동원해서라도 이번 결과에 대한 반론(反論)과 이론(異論)을 기탄없이 제시하도록 하고 조사단이 그들을 납득시키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일부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을 해소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일이다.

천안함의 진상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밝혀지게 돼 있다. 그 심판의 시간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지 않으려면 정파와 이념을 넘어서서 국민 모두가 진실 앞에 정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