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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채권단이 공동제재로 기업 몰매 때려선 안 돼'

화이트보스 2010. 9. 20. 15:49

법원, '채권단이 공동제재로 기업 몰매 때려선 안 돼'

입력 : 2010.09.19 23:02

 

서울중앙지법은 17일 현대그룹이 채권은행단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채권단이 7월 현대그룹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거부를 이유로 신규 여신은 중단하고 만기 여신은 회수하기로 한 공동 결의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284%에 달한다는 이유 등으로 현대그룹을 재무약정 체결을 통해 구조조정을 할 대상으로 지정했으나 현대그룹이 이를 거부하자 공동 제재를 결의했었다.

재무약정이란 매년 대기업의 재무상태를 평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채권단과 기업이 약정을 맺고 강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제도다. 공식적으로는 채권단이 나서지만 금융당국이 행정지도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올 들어 금호아시아나·동부·애경·한진·대한전선 등 주요 그룹들이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법원 결정으로 채권단이 공동 제재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방식에는 적지 않은 제한이 따를 전망이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채권단이 금융감독원의 은행업 감독규정과 시행세칙을 근거로 기업에 재무약정 체결을 요구하고 기업이 거부할 경우 공동 제재하는 것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이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필요할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채권단이 법률상 근거도 없이 하위(下位) 규범인 금감원 규정을 들어 대출과 같은 기업의 주요 경제활동을 제한한 것은 불법이라는 뜻이다. 법원은 "공동 제재 결의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도 해당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강제적인 재무약정 제도를 적용하려면 관련 법 조항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긴급한 경제위기 국면이 아닌 한 법률로 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하도록 강제하는 건 위헌 논란이 일 수 있는 등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제계에서는 이미 "채권단끼리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재무 약정 체결 대상기업을 선정하고 강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건 경영 활동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치"라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은행과 기업 간의 거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기업은 은행에 내부 경영 상태를 솔직히 알리고, 은행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감안해 대출금을 내주거나 마케팅에 관한 조언을 해주는 게 정상적인 관계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신뢰 관계가 적지 않게 허물어져 기업이 어려워지면 채권 은행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압박해 기업의 경영권을 일방적으로 제한하거나, 기업의 약정 체결 거부를 이유로 가차 없이 대출금을 회수해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은행과 기업의 정상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법적·행정적 지원 방안 등을 찾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