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지키다 다친 사람들인데… 함장 처벌 얘기 나오는 건 황당
국군병원선 고통 호소해도 외면… 쌓여가는 치료비 보면 앞이 캄캄
지난 28일 오전 10시 인천의 한 종합병원 6층 입원실에서 대부분 환자가 '6·25전쟁 60주년 서울수복기념 국군의 날 행사'를 중계 방송하는 TV를 지켜봤지만, 신은총(24)씨는 자고 있었다. 신씨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우다 겨우 잠들었다. 그는 지난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때 살아남은 장병 58명 중 한 사람이다. 머리와 허리, 무릎을 심하게 다쳐 여전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는 전역일을 22일 앞둔 지난 20일 의병(依病) 제대했다.신 전 하사는 사고 6개월이 지날 때까지 한 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민간인 신분이 된 뒤에야 이날 처음으로 본지 기자와 만난 그는 생존자들에 대한 푸대접과 사고 관련자 처벌 문제에 대해 분통부터 터뜨렸다. "나라를 지키다 만신창이가 된 생존자들을 외면하고 도리어 (최원일) 함장을 처벌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소리라도 지르고 다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 ▲ 28일 오후 인천의 한 병원에서 만난 천안함 생존자 신은총 전 하사는 사고 당시 상황을 담담히 설명하면서도 “(국가가) 나라를 지키다 만신창이가 된 생존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신씨는 "치료가 허술해 국군수도병원장에게 민간 의료기관으로 옮기겠다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병원측이) 들어주지 않았다"며 "다친 지 5개월 뒤인 지난 9일 이 병원에 입원해서야 무릎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날 2주 만에 수술받은 무릎의 실밥을 풀었다.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데 소속 부대인 국군수도병원에선 "전역증은 본인에게만 발급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지난 26일 휠체어를 타고 아버지 신원향(57)씨와 함께 국군수도병원에 다녀왔다.
사고 때 배가 기울면서 상황실 전자기기들이 덮쳐 두개골이 깨지고 흉추와 요추, 무릎뼈가 부러져 후송된 그에게 수도병원 의료진은 "별 이상이 없다"며 "3주면 걸을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신씨는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측에서 듣지 않아 다른 생존장병과 함께 간호장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병실 문을 닫아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최정애(56)씨는 "이달 초 수도병원을 퇴원할 무렵 군의관에게 '왜 이렇게 무릎이 부어오르느냐'고 했더니 '속에 상처가 나서 그렇다'고 하더라"며 "놔두면 괜찮아진다고 할 땐 언제고…. 정말 욕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군수도병원측은 "신씨는 군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을 때만 민간 위탁 치료가 가능하다는 국방부 환자관리 규정에 따라 수도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라며 "의병 전역이 늦어진 것은 병원 전문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권유로 해군에 입대했던 신씨는 지금 해군에 입대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어머니 최씨는 "은총이에게 '기념으로 군복 한 벌 챙길까'라고 했더니 '그냥 다 갖다 버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신씨는 지금 매일 쌓여가는 치료비가 걱정이다. "군에서는 민간 치료를 받으면 한 달 병원비만 지급하고, 그마저 지급 심사를 하는 데 3~4개월 걸린다고 합니다. 군인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치료비도 더 나온다네요." 신씨는 "앞이 캄캄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씨는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며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물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다. 신씨는 "대부분의 생존자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엘리베이터의 작은 진동에도 놀라 기절한 생존병사도 있다"고 했다. 신씨는 또 "최원일 함장님은 죽은 대원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며 두려움에 떨었다"며 "다른 생존장병이 함장님이 잠들 때까지 옆 침대에 누웠다가 잠들면 방에서 빠져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허리 부상이 심한 신씨는 똑바로 누워 잠자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는 "영어 공부를 하려고 책을 폈지만 너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볼 수가 없다"며 "뇌진탕 후유증이 심해 당분간 책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신씨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은총'이란 이름 때문에 살아난 것 같아 요즘처럼 내 이름에 감사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렇게 앉아 있잖아요? 이젠 감히 뛰어다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으니…." 그는 "스키장에서 보드를 타보고 싶었는데 올겨울에는 꼭 탈 것"이라며 "아직 걷지도 못하지만 피나게 연습하고 물리치료도 열심히 받을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