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기대어 사는 50세]
"어쭙잖은 돈벌이보다 기초수급이 더 낫다" 몰래바이트 하며 딸과 국가혜택으로 생활
21일 오후 7시, 가로등이 환한 서울 강남 주택가에 제네시스 승용차가 멎었다. 주차대행원 이주완(가명·50)씨가 차에서 내려 담벼락 사이의 공간이 충분한지 살폈다. 승용차 주인은 인근 음식점에서 가족들과 저녁 메뉴를 주문 중이다.
이씨는 매일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이 식당에 저녁 먹으러 온 손님들의 차를 대신 주차해주고 식당에서 3만5000원을 받는다. 그는 "근로소득이 잡히지 않도록 현금으로 일당을 받는 '몰래바이트(정부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 ▲ 21일 오후 이주완(가명)씨가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손님 승용차를 대신 주차하기 위해 서 있다. 이씨는 매일 3시간 반 동안 ‘몰래바이트’로 일해 3만5000원을 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여고생 딸(16)과 사는 이씨는 3년 전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이 법정 최저생계비(1인 가구 50만원~4인 가구 136만원)에 못 미쳐, 최저생계비 미달 액수를 지원받고, 전기세 할인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씨가 주차대행으로 다른 소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는 기초수급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씨는 국가로부터 월 70만원의 기초수급비를 받고 있다. 30만원은 대가 없이 현금으로 주는 돈이고, 나머지 40만원은 오전 9시~오후 3시 사이 동네를 청소하고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큰 혜택은 월세 5만원짜리 공공 임대주택(29.7㎡·9평) 입주권"이라고 했다.
한때는 그도 버젓한 중산층이었다. 택시기사와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의 경매 보조인으로 일해 월 200만원씩 벌었고, 연립주택(109㎡·33평)도 구입했다. "이만하면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했을 때, 부인이 이씨 몰래 사업하다 집을 날리고 빚 8000만원까지 남긴 채 집을 나갔다. 2005년이었다.
이씨는 서울 송파구에 보증금 없는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12㎡·4평)을 얻었다. 다시 택시 운전대를 잡았지만, 틈틈이 집에 들러 딸을 돌보자니 월수입이 50만원에 그쳤다. 보다 못한 동료들이 "기초수급 신청을 하라"고 권했다.
이씨는 "주민센터에 수급자 신청하러 갔을 때 창피해서 입이 안 떨어졌다"고 했다. 몸도 건강하고 나이도 젊은데 국가에 기대서 산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빨리 자립해서 '탈(脫)수급'을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계산이 달라졌다.열심히 발품을 팔면 월 100만원짜리 일자리는 너끈히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을 구하면 수입이 최저생계비(2인 가구 85만원)를 웃돌아 기초수급 자격이 사라지게 된다.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되는 순간 월 70만원의 현금 외에도 전기세 할인·TV수신료 면제·쓰레기봉투 무료 지급 등 40여 가지 혜택이 일시에 박탈당한다.
이씨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오늘 잘릴지 내일 잘릴지 알 수 없는 일자리가 대부분인데, 월 100만원씩 벌면서 불안하게 사느니 월 70만원씩 안정되게 받는 게 낫다"고 했다.
수급자 자격을 잃으면 임대주택에서도 나가야 했다. 요컨대 국가에 기대 '월 70만원과 40여 가지 복지혜택'을 안정적으로 받는 편이 자립해서 월 100만원씩 불안정하게 버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이씨는 "국가에 미안하지만…. 지금 내 처지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복지에 기대는 게 낫다"고 했다.
그러나 기초수급 혜택을 받더라도 두 사람 식비에 여고생 딸의 용돈과 문제집 값, 공과금과 통신요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생각다 못해 6개월 전 주차대행원 같은 '몰래바이트'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는 "지금 제도는 법을 지키면 계속 가난하게 살고, 법을 어겨야 형편이 나아지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기초수급자로 살면 간신히 연명만 할 뿐 저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섣불리 '탈수급'하면 수급자일 때보다 더 허덕이게 된다.
이날 이씨는 마지막 저녁 식사 손님의 오피러스 차량을 식당 앞으로 끌어다 준 뒤 일당을 받아 귀가했다. 그는 그 돈을 모아 딸을 학원에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작년 말 현재 기초생활 수급자는 총 156만여명이며, 이 중 27만명이 이씨처럼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27만명 중 80%(21만명)가 이씨와 비슷한 이유로 수급 탈피를 꺼리고 있다고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추정했다.
[수급자 탈출에 성공한 50세]
기업 자활 프로그램 참여… 자신감 회복, 3년 만에 수급자 꼬리표 떼고 공장경비로
"1만2300㎏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19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의 한 알루미늄 공장 출입문. 경비원 임길(50)씨가 공장을 나서는 트럭 운전사에게 힘찬 목소리로 알루미늄 적재량을 알려주며 인사했다.
- ▲ 19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알루미늄 공장에서 임길씨가 물건을 적재한 차량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임씨는 일자리를 얻은 덕에 곧 기초수급 대상자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지난 달까지 임씨는 복지에 기대 살아가는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부인과 이혼하고 사업에 실패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재기하려 서울 신도림동에 참치횟집을 차렸다가 뇌병변으로 쓰러져 그나마 있던 돈을 모두 날린 것이 2007년이었다. 그해 11월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해서 월 20만원을 받아들었다. 비참했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에 나라에 기댄다는 게 창피했다"고 했다. 그는 수급에서 탈피하려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뇌병변 후유증으로 왼팔을 제대로 쓸 수 없어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재혼한 아내와 둘이 살려면 기초 수급 수준을 뛰어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한 데 아무리 해도 그런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2월 산업은행 '사랑나눔재단'이 운영한 자활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임씨의 인생이 달라졌다. 힘들게 지내다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어울려 토론도 하고 연극도 하니 활기가 솟았다. 건축도장 자격증도 땄다.
임씨는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막막했는데, 건축도장을 배운 뒤 '돈을 모아서 페인트 가게를 차리면 되겠다'는 계획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재단 소개로 지난달 알루미늄 공장에 취업했다. 이달부터 기초수급에서 탈피한다. 그는 "수급자로 살면서 자꾸만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 괴로웠는데, 이젠 희망과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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