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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신세 된 한국 保守

화이트보스 2010. 11. 2. 16:53

'찬밥' 신세 된 한국 保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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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1.01 21:08 / 수정 : 2010.11.02 01:25

김대중 고문

조직도 바람도 없이 전통과 윤리에만 의존했던
이 땅의 보수는 집권여당이 보수와 중도와 실용을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지 않도록 힘을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의 '보수(保守)'는 지금 버림받은 기아의 신세이고 기피의 대상이다.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확실한 주류(主流)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탈(脫)보수를 외치고 있고 보수는 마치 무슨 몹쓸 병균 취급을 당하고 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마저 드디어 보수를 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안상수 대표는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개혁적 중도보수'를 지향한다며 탈보수 대열에 합세했다. 그의 언급에 '보수'가 말석에 끼어 있기는 하지만 그의 방점은 '중도'에 있음을 그도 알고 우리도 안다. 어쩌다가 이 땅의 보수는 이처럼 천대받거나 마지못해 곁다리로 끼는 장식품으로 전락했는가? 안 대표의 언급 중에 보수에 수모를 안기는 것은 한나라당이 중도보수로 "거듭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나라당의 노선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안 대표 등의 '보수 밀어내기'는 이른바 '부자감세' 논란에서 그 구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 덕택에 집권정당에서 등 높은 의자에 앉았는지 전혀 모르는 척 제멋대로 '부자' 운운하고 '감세'를 떠든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배신이 따로 없다. 하긴 보수의 지지 없이는 절대로 당선이 불가능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보수를 언급한 적이 없고 자신을 보수라고 내세운 적이 없다. 그저 중도와 실용만을 되뇌어 왔을 뿐이다.

보수는 한마디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자유시장경제, 법질서의 확립을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기업의 활성화와 '작은 정부'를 통해 국가 기능의 최소화를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 굳건한 안보와 강한 군대의 유지 또한 보수의 주요한 기둥이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기존 가치의 변화를 신중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보수가 독존하는 사회는 극우로 간다. 건강한 나라는 보수가 진보·좌파·사회주의와 공존하는 나라다.

한국의 보수는 모욕적인 표현들로 수모를 당해왔다. 반동(反動)이니 수구니 꼴통이니 하는 접두사가 보수의 참뜻을 훼손해왔다. 그런 폄하가 다른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나 집단에 의한 것일 때는 경쟁적 차원이려니 하고 감수하거나 인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권당이 공개적으로 탈보수를 내걸고 대통령이 보수를 우회하며 기피하는 상황이라면 보수의 존립을 위한 본질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과거 운동권이나 진보세력은 보수정권을 타도하는 운동의 하나로 군을 기피해왔다. 한국의 보수는 강한 군에 의지하면서도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다분히 그 가치가 훼손된 만큼 군대는 한국 보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래서 진보·좌파 운동권 중에는 군에 가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다. 오늘날 실용·중도·서민·중산층을 내세우면서 보수를 기피하는 집권당 인사들이 과거에 군 복무를 기피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우연일까? 그들은 애당초 보수의 가치에 천착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땅의 보수가 지금 이처럼 왜곡되고 수모당하고 기피당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임할 것인가? 특히 자기들이 아무리 탈보수를 내세워도 보수는 결국 자기들 수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시대착오적 한나라당에 대해 주류 보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보수'를 끼워넣기로 삼아 중도를 팔며 궁극적으로 야당과 좌파, 젊은 층 서민의 표를 노려보겠다는 것이라면 그런 한나라당의 기회주의를 방관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대주주 격인 보수세력의 자기포기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이 가야 할 길은 보수라는 주류세력에 발을 붙인 채 야당이 가는 '위험한 길'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정치와 정책을 구현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강령에 들어 있는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어느 한 시점의 당대표와 그 주변 사람들이 기회주의적으로 '먹칠'하는 상황을 한나라당에 표를 줬던 사람들이 그냥 넘길 것이라고 믿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그동안 조직도 없고 바람(風)도 없이 전통과 윤리에만 의존해 지탱해왔던 이 땅의 보수는 정치권, 특히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자기들 마음대로 보수와 중도와 실용을 꺼냈다 집어넣었다 하지 않도록 어떤 힘을 보여줘야 한다. 보수는 수모를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분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천자토론] '개혁적 중도보수' 한나라당, 정체성 문제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