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 주필
"누가 연평도 前에 ‘불이야’ 외친 적 있나
우리 사회의 전쟁 상식은 迷信일 뿐 이다"
1940년 6월 3일 프랑스 제4기갑사단 사단장 드골 준장은 갓 취임한 레노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독일 전차 2400대가 국경을 넘어 프랑스 안으로 물 밀듯 밀려오던 때였다. "총리 각하. 우리의 패인(敗因)은 프랑스군 지휘부가 저의 전차전(戰車戰)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적이 먼저 이를 채용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국방차관 아니면 제가 창안한 전차군단(軍團) 사령관으로 임명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당돌한 내용이었다.
드골은 1주일 전 계급장만 별을 달았을 뿐 정식으로 장군 진급도 안 된 대령 신분이었다. 그러나 총리는 이 낯 두꺼운 요구대로 드골을 국방차관에 임명했다. 드골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드골은 1934년 '미래의 군대'라는 저서를 통해 전차군단 10만명의 양병(養兵)을 주장했다. 그 이후 군 지휘부와 유력 정치인을 쫓아다니며 전차군단 창설을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군 지휘부와 정치인들은 드골을 골칫덩이로 취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드골의 독자는 국경 너머 독일에 있었다. 독일 전차군단을 이끌고 막 파리로 진격하고 있던 독일 제19전차군단 사령관 구데리안 장군이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5월 10일 개전(開戰), 6월 14일 파리 함락, 6월 22일 항복이란 치욕의 역사를 썼다.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전에 서해 5도의 안전을 염려했던 군 지휘부나 장군이 있을까. 드골처럼 "불이야" 하고 외쳐대며 비상 대책 수립을 호소하고 다니다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은 장군이 있을까. 아직 들은 적이 없다. 만약 그런 얼뜨기 같은 사람이 있어 "부잣집 아이들 무료 급식보다 몇 배 급한 게 서해 5도 방위 대책"이라며 청와대·정당·국회를 쫓아다녔다면 무슨 대접을 받았을까. 문전박대(門前薄待)는 물론이고 "한 번 더 귀찮게 굴면 인사조치해버리겠다"는 으름장을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TV 심야 토론에 나와 "김일성 핏줄의 전쟁관(觀)은 저희에게 필요한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라 믿는 것"이라며 "북한을 벌(罰) 줄 때는 망나니 같은 반발에 대비해 전력(戰力)을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보다 가로젓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공격당하던 그날, 대한민국은 위아래 너나 할 것 없이 벌건 대낮에 전원 취침중(就寢中)이었다.
전쟁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이런 상식을 비웃고 뒤엎는다. 우리 사회의 전쟁에 관한 상식은 상식이 아니라 비상식이다. 늑대가 지휘하는 양(羊)의 무리가 양이 지휘하는 늑대의 무리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고 김정일의 북한은 어느 쪽일까. 정답이 마땅치 않다면 늑대가 이끄는 늑대의 무리와 양이 이끄는 양의 무리라는 항목(項目)을 추가해서라도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재출발해야 한다.
경제력의 우세가 전투력의 우세로 자동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배부른 쪽이 믿고 싶어하는 미신(迷信)이다. 18세기 이래 전쟁사에 등장하는 605개의 대표적 결전(決戰) 가운데 먼저 공격하는 쪽이 우세했던 것이 71.4%였다. 경제력이 큰 쪽이 이겼다는 사례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동네 싸움에선 작은 사람이 먼저 코를 비틀어 자세를 무너뜨리고 나서 가랑이를 걷어차면 큰 쪽도 도리없이 벌렁 나자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경제력이 약한 쪽도 기습전이나 단기전이라면 해볼만하다고 믿는 순간 선제공격에 운명을 걸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대통령과 국민은 전쟁 전문가가 아니다. 전쟁의 프로는 군인이다. 연평도 피격(被擊) 이후 아마추어들이 프로를 향해 갖가지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이 섬에는 왜 병력이 이것뿐이고, 저 섬에는 왜 그 무기를 배치하지 않았느냐고 고함치고 있다. 프로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군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러나 이게 정상은 아니다. '무엇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과 국민의 몫이고, '어떻게'를 찾아내는 것은 군의 몫이어야 한다. 군은 눈을 내리깔고 눈치만 살필 게 아니라 제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이 프랑스어로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은 지금부터 200여년 전이다. 국민더러 읽으라는 게 아니라 국가 보위(保衛)의 책임을 진 대통령에게 읽히기 위해서다. 그 대통령 이름이 나폴레옹이다. 대통령의 책임은 그토록 엄중(嚴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