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승범 강화특공대 전우회 고문이 강화특공대의 전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월간조선
경기 강화도 지역의 향토사료집 ‘강화사(江華史)’에 등장하는 강화특공대의 창설 배경이다. ‘강화사’는 1976·1988·1994·2003년에 수정판이 나왔는데, 이 내용은 1994년판까지만 나온다. 2003년판 ‘신편(新編) 강화사’에는 정반대의 내용이 나온다. 강화특공대가 민간인을 집단 학살했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 ▲ 1951년 1월 7일 강화도 돌모루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 멀리 보이는 산 일대가 북한 개풍군 대성면이다./월간조선
최중석씨의 큰조카인 최승범(76)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진실화해위의 결정문을 받은 최중석씨가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다”며 분통을 참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중석씨는 결정문을 받은 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 ▲ 1952년 6월 25일 당시 강화군수가 세운 강화특공대 기념비. 3단 기단으로 돼 있다./월간조선
신편 강화사가 발간되자 최중석씨는 조카 최승범씨에게 “절대 그런 일 없었다. 완전히 왜곡·날조됐다”며 반박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자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강화특공대 전우회원들도 민간인을 학살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전우회는 당시 강화특공대와 소년대에서 활동했던 대원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 70여명 중 강화특공대원이 3명, 나머지는 소년대원들이다.
전우회장 이계용(87)씨는 “특공대가 양민을 학살했다면 나부터 여기 고향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양민을 죽였다는 얘기는 7~8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대원들 대부분 나이가 많아 움직일 여력이 없었고 자연사하는 사람도 많아 숫자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특공대가 공식적으로 사람을 처단한 사례는 하점면 면장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점면은 당시 ‘제2의 모스크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좌익인사가 득실댔다”며 “강화특공대는 좌익세력의 우두머리였던 하점면장을 체포해 처단했다”고 말했다.
강화특공대에서 활동하며 초지진 일대를 사수했던 안득규(83)씨도 “내가 지켰던 곳에서도 특공대가 수십 명의 주민을 학살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얘기를 어떻게 그리 쉽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목숨을 걸고 강화도를 지켰는데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진짜인 양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이 나라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최승범씨는 “대한민국 정부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니 북한에 포격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평도가 왜 공격당한 줄 아세요? 지난 10년간 좌파정부가 진실을 왜곡하고, 지금 정부가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니까 북한이 남한을 우습게 봐 포를 쏘는 겁니다. 강화특공대가 주민 430여명을 살해했다면 그 후손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뒀겠어요? 강화도에 사는 80~90대 노인들에게 물어보세요. 강화특공대가 사람을 죽였는지….”
- ▲ 강화특공대 전우회 회원들. 오른쪽부터 이계용, 이희석, 이석범, 홍순주, 최승범, 안득규씨./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