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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지리산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가을은 참회와 용서의 계절이며, 무소유 무집착의 마음을 부르는 날들입니다.
지리산 반달곰과 뱀, 개구리는 여태 먹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단식과 묵언정진의 동안거(冬安居)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중에 사는 큰 기쁨은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지요. 봄이면 내 몸의 잎과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내 몸 그늘 아래 누군가를 쉬게 하고, 가을이면 무성한 잎과 열매를 모두 나누어주는 한 그루 무욕의 나무로 섰다가 겨울이면 누군가의 온돌방을 위해 장작불이 되는 것이지요.
- ▲ 남원 와운마을의 천연기념물 제424호인 지리산 천년송의 겨울 모습.
-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불행하게도 곰곰 생각해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의 기생동물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지리산에 들어오면서부터 나는 되도록 책이나 신문 등을 읽지 않으려 애를 썼지요. 명색이 시인이란 작자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그 무슨 자랑거리겠습니까. 하지만 그간 읽고 배운 것만을 가지고도 나의 삶이 어떻게 그것들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요. 더군다나 픽션은 더욱 더 그러했습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만도 못한 소설과 시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자문하고 자문했습니다. 자위행위 수준의 수많은 책들 그 자체가 애꿎은 나무들만 죽이는 것이려니 생각했지요. 산중의 겨울밤, 내 한 몸 춥지 않으려고 땔나무를 구하고 그 나무로 군불을 지피다가도 문득 뒤통수를 치는 자괴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마저도 내 자신의 치열하지 못한 창작행위에 대한 반성이며, 오히려 산중에 사는 이들의 교만에 가까운 발언인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지요. 다만, 독서나 창작보다는 새롭게 세상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걷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기억에 모든 생각 맡기고 걸어
강원도 황지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1천3백리를 걸어보고, 지리산 아랫도리 850리를 도보순례하고, 백두대간 종주 1천5백리 길과 새만금 삼보일배 8백리 길, 그리고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 1만리 길, 지리산둘레길을 제안하느라 세 바퀴나 걸었으니 참으로 오랫동안 이 세상의 가장 느린 속도로 걸었지요.
물론 도보순례의 목적은 환경과 생명평화 운동이었지만, 그 이전에 내 몸으로 일일이 국토를 둘러보며 내 생의 모든 지식과 욕망을 극도로 단순화시켜보는 것이었습니다.
- ▲ 1 나무의 침묵의 소리를 듣기 위해 남해군 창선면의 500년 이상 된 왕후박나무를 틈이 날 때마다 찾아간다. 2 하동군 악양면 문암송. 바위 틈에서 자란 거대한 소나무에서 그 위대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3 남해 창선면의 왕후박나무 밑동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 오래 걷다 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걷는 목적까지도 사라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무아 무념의 경지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보다는 그저 몸의 기억에 모든 생각을 한번 맡겨보는 것이었습니다. 걸어서 간다는 것은 조금 느리고 힘이 들지만 태초부터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의 지름길은 없었습니다. 인간은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했지만 단 하루 단 한 걸음이라도 걷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고, 가
고자 하는 그곳에 도착할 수도 없습니다.
오래 걷다 보니 인간의 발걸음으로 빨라야 하루 40km를 갈 수 있으며, 바로 이 거리에 대한 오랜 경험들이 ‘100리 길’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으리라는 것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걷다 보면 알게 됩니다. 한 번쯤 쉬어야 하는 거리가 10리 길이고, 하루 종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바로 100리 길이라는 것을. 오래 걷다 보면 이마저 사람만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꽃이 피면서 북상하는 속도가 그러하고,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섬진강 매화가 필 무렵부터 북쪽으로 하염없이 걷는다면 강원도 화진포까지 내내 피는 꽃의 속도로 걷는 일이요, 또한 단풍이 곱게 물들 무렵 강원도에서 남쪽으로 하염없이 걷는다면 지리산까지 날마다 남하하는 단풍의 속도로 걷게 됩니다. 사람의 속도와 자연의 속도가 모두 한 걸음 한 호흡이었습니다.
이는 누구나 사전 지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는 또 제대로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듯이 책이나 교육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지식은 직접 몸속에 저장되는 지혜와는 확연히 다르지요.
하물며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나무의 기억은 어떠할까요. 그리고 수억만 년 된 돌의 기억, 그 돌로 만든 천년고찰 삼층석탑의 기억 등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부끄럽지 않은지요.
그리하여 나는 일단 오래된 나무를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아무래도 당산나무 등의 노거수인 신목(神木)들은 일종의 백과사전이지요.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백과사전인 나무의 침묵, 그 묵언의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려는 나의 시도는 여전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일단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해군 창선면의 오백년 된 왕후박나무를 찾아가고, 송광사의 천년된 쌍향수, 지리산 뱀사골 와운리의 천년송과 하동군 악양면의 문암송, 경북 상주의 뽕나무, 전북 고창의 이팝나무 등 이 땅 도처에 살아 있는 신목(神木)들을 한 번 찾아가보려는 것이지요.
특히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마을의 천연기념물 제424호 지리산 천년송. 이 나무는 내가 지리산에 입산한 10년 동안 계절마다 최소한 한 번쯤은 찾아뵙는 소나무 중의 소나무입니다.
- ▲ 1 화엄사 가는 길목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 구름과 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 3 천연기념물인 충북 영동의 천태산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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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맑아지는 듯하고, 드러난 뿌리는 백두대간 끝자락이자 시작인 지리산의 기운을 담고 있는 듯해 나도 몰래 힘줄이 불끈 솟아나고, 용의 비늘 같은 껍질과 휘늘어진 가지는 승천의 기상을 담고 있어 문득 공중부양의 환상을 실감케 하고, 수억의 솔잎들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씩을 찔러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하물며 ‘솔바람 태교(胎敎)’의 시원이기도 한 천년의 바람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
을까요.
지리산 천년송의 수령은 사실 1000년이 아니라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하니 500년 혹은 800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높이는 20m, 둘레는 4.3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하지요. 지리산의 구름도 누워서 쉬어 간다고 해서 붙여진 와운마을의 주민 정경덕 할아버지 등 15명이 이 나무를 보호 관리하는 소유자이지만 실은 오랫동안 이 나무가 와운마을과 주민들의 실제 주인이자 수호신이었던 것입니다.
사람과 자연의 속도 모두 한 걸음 한 호흡
20m 간격을 두고 위쪽의 한아시(할아버지)송과 아래쪽의 할매송이 이웃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주민들은 이 중에서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천년송이라 부르며 당산제를 지내왔습니다.
예로부터 아들을 낳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와 밥을 한지에 싸서 소나무 밑에 묻고, 왼새끼줄을 꼬아 소나무에 세 바퀴 둘리고, 동동주를 세 군데에 나누어 뿌리는 치성을 들이는데,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자식을 낳지 못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마침내 천년송의 은덕으로 수태를 하게 되니 자식을 본 사람들이 어찌 다시 이 나무를 찾지 않겠는지요. 그리하여 이른바 ‘솔바람 태교’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태교 중에서 말만 들어도 정신이 확 트이는 솔바람 태교야말로 신생아들에게 주는 지상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지요. 일찍이 송수권 시인이 이 나무를 알아보고 ‘솔바람 태교’라는 제목의 시를 쓴 바 있지요.
‘뱀사골, 우리는 늦깎이 아이 하나를 심어 놓고 / 솔바람 태교를 하러 가는 길이다 // 누가 심었는지 애솔 하나 자라 / 마을 지킴이로 천년송이 되고 / 서리서리 용비늘 뒤집어쓴 채 꿈틀거리면 / 온 골짜기 청비늘 가르는 솔바람 소리 / 겹겹 에워싼 저 능선들의 이마가 서느랍다 / 초밤 별이 서느랍고 / 밤중에 뜬 유정한 달이 서느랍다 / 소짝새 울음이 한바탕 자지러지니 / 뱃속에 든 아이의 배냇짓 잠도 서느랍다 // 아내는 항만한 배를 내밀고 / 천년송 아래 섰다’ (중략)
와운마을의 천년송처럼 꼭 천연기념물은 아니더라도 이 땅에 수없이 많은 노거수와 신목들이 있습니다. 그 나무들의 온 몸에 입력되거나 활자화된 지수화풍의 시절들을 엿보며, 그 뿌리를 베개 삼아 하룻밤이라도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날이면 온몸에 수많은 나이테가 들어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나무의 말씀을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고, 그러니 당연히 쓰거나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나무의 눈으로 한순간이라도 주변 풍경을 둘러볼 뿐이지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삼세의 풍경과 시간과 사건을 나무처럼 말없이 상상하며 내 몸에 입력해 보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며 배부른 노릇인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책을 읽거나 세미나를 하는 등 어설픈 교양적 욕구충족보다는 훨씬 더 육질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지요.
내게 있어 유일한 책은 누가 뭐래도 나무입니다. 그것도 되도록 오래된 나무, 신목이지요. 늦가을의 노란 은행나무 잎은 그대로 수천 년 동안 누군가에게 배달된, 그러나 아직 읽지 않은 엽서요, 나뭇가지는 집배원의 손이며, 몸통은 그대로 우체국입니다. 이 은행나무 우체국은 활자화되지 않은 수많은 사연들을 나이테 사이사이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읽어내는 깊은 눈이 필요할 뿐입니다.
나무는 살아 있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집이요, 절이요, 고택이요, 진정한 책이지만, 죽어서도 집이 되고 책이 됩니다. 상생의 날들을 꿈꾸며 주문을 욉니다. 나무, 나無, 南無!
<한 편의 시>
단풍나무 인터넷
절정이야
혁명도 없이 희망도 없이
내 몸은 지금 절정이야
피아골 단풍잎들이 스팸메일을 보내왔다
자판을 칠 때마다
잎잎 푸르던 날들이 저물고
엔터키를 두드릴 때마다
섣부른 낙엽들이 몸을 날린다
밤새 단풍나무 벗 삼아
고스톱을 치다가
야, 낙장불입이야 낙장불입!
다투기도 하다가
그래, 그렇지
인생이야말로 낙장불입이야
아침저녁으로 접속하는 단풍나무 인터넷
옷 벗기 내기를 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무서리 내리고 나목이 되었다
그래, 일단 푸욱 겨울잠을 자자
이원규(李元圭)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 출간.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순천대 문창과, 지리산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강사.
/ 글·사진 이원규 jirisanpoe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