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민주화 시위' 중국에도 번질까]
사복경찰 대놓고 시민 연행, 인터넷·휴대폰 통제 강화… 인권·시위 용어 차단시켜
주말인 20일 오후 2시(현지시각), 베이징 중심가 백화점 거리인 왕푸징(王府井) 입구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 앞. 평소보다 많은 수십 명의 교통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수십 명의 외신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고, 주변에 주차한 공안 차량도 자주 눈에 띄었다.
밀려드는 쇼핑객과 국내외 관광객들이 가던 길을 멈추면 경찰들이 "빨리 지나가세요. 멈추지 마세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곳에서 200m 떨어진 뒷골목에도 마이크로버스를 포함한 30여대의 공안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의 인민광장, 광저우의 인민공원 등지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대규모 집회는 없었지만 경찰의 경비는 삼엄했고, 사복 차림의 공안에 붙잡혀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고 중화권 언론은 전했다.
- ▲ 중국 공안(경찰)들이 20일 베이징 왕푸징 입구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 앞에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이곳은 중국판(版) ‘재스민 혁명(튀니지의 시민 혁명)’을 일으키자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집회를 갖자고 제안한 13개 장소 중 하나다. 중국은 최근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중국으로 번질 것을 우려, 주요 도시에 대한 경비와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다. /로이터 뉴시스
이날 왕푸징 일대에 공안 병력이 대거 증원된 것은 지난 19일부터 베이징, 상하이, 톈진, 광저우 등을 포함한 전국 13개 도시 번화가의 특정 지점에서 재스민 혁명(튀니지의 시민 혁명)을 위한 집회를 갖자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왕푸징의 맥도날드 앞도 그중 한 곳이었다.
지난 19일 해외 화교들을 위한 뉴스사이트인 보쉰(博訊)에는 중국의 재스민 혁명을 촉구하는 글 하나가 게재됐다. 이 글은 중국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미니블로그(중국명 웨이보·微博)를 타고 순식간에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이 글은 "실업자와 강제 철거 피해자, 상경 민원인, 퇴역 군인 등 누구든 특권층 부패와 빈곤층에 대한 압박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20일 오후 2시 전국 13개 도시의 특정 장소에 모여 침묵시위를 갖자"고 제안했다. 또 '우리는 먹을 것을 원한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등의 구호를 제시하며 ▲사유재산권 보장 ▲사법 독립 ▲정치 개혁 ▲일당 독재 종식 ▲언론 자유 등을 주장했다.
중국 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고물가와 실업난,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빈부·도농 간 격차 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최근 상황이 튀니지·이집트 등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공안 당국은 이날 전국 13개 도시 집회장소에 경찰 병력을 대거 배치해 집회 원천 차단에 나섰다. 또 반체제 인사 등에 대한 예비 검속에도 들어갔다.
인터넷과 휴대폰에 대한 전면 통제도 실시되고 있다. 중국 검열 당국은 중국 인터넷상에서 '재스민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을 대거 삭제했으며, 바이두(百度) 등 검색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관련 글을 검색하는 것도 차단했다.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등 국영 이동통신 회사들도 금기어가 들어간 휴대폰 문자 메시지 발송을 막고 있다고 대만 언론은 전했다. 베이징 외교가 소식통은 "아직은 중국 정부가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자칫 아프리카·중동처럼 한꺼번에 민주화 욕구가 분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중국 최고위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
지난달 튀니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벤 알리 전 대통령이 물러나 23년 독재가 청산된 것을 두고 튀니지 국화(國花)인 재스민 꽃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 재스민 혁명은 최근 중동 지역에서 불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