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법정스님의 이 게송은 속가의 외조카이며 출가의 조카상좌인 현장스님이 큰스님이 생전에 써 준 것을 간직해오다 스님의 열반을 맞아 세상에 처음 공개했으니 스님의 열반송이 되었다.
필자는 이 게송을 3연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는 3·3·5조의 우리의 전통적인 정형률을 지니고, ‘건’ ‘면’ ‘만’ ‘인’ 등의 비음(鼻音)으로 압운(押韻)하여 시적인 리듬을 갖게 하였다.
1연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는 스님의 주된 사상인 자연사상과 생명사랑, 환경보존사상을 아주 쉽게 나타낸 것이다. 스님은 1994년 시민운동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여 자연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운동을 이끄셨다.
필자가 언젠가 아내와 함께 길상사 법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마침 법문의 주제가 ‘환경보존과 자연사랑’ 이였다.
스님은 그날 법문에서 “환경보전은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이며, 의무이다”고 설하셨다. 스님의 법문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생활법문이었다.
2연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는 〈무량수경〉에 나오는 서방극락정토를 부정하고, 선종 선사들이 부르짖는 유심정토(唯心淨土)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사사불공(事事佛供)이고 처처불상(處處佛像)이다”란 선가의 선구가 있다.
스님은 ‘참된 앎’이란 글에서 “경전이나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하고 메마르다.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참된 앎이란 타인에게서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 내 자신이 몸소 부딪쳐 체험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스님은 경전지상주의자도 아니고, 선종절대주의자도 아니다. 길상사 큰법당이 ‘극락전’인 것을 보면 선종 선사들이 쉽게 보는 이행교(易行敎)인 정토신앙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진정한 참불교는 선과 교 그리고 염불정토 모두가 조화롭게 신행생활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스님은 그런 불교를 행하신 것이다.
김영한 보살이 기증한 대원각 술집이 성스러운 사찰 법당으로 변하여 모든 시민에게 진리의 법음(法音)을 들려주는 맑고 향기로운 기쁨의 극락과 같은 곳이란 뜻과 염원을 가지고 스님이 법당 이름을 ‘ 극락전’이라고 정했으리라 생각한다. 어리석은 중생이 전식개오(轉識開悟)하여 부처가 되고, 예토가 정토가 되는 형국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며 불교의 본질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오도송에서 “남아 대장부는 머무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男兒到處是故鄕)”이라 하였다.
스님은 ‘꽃에게서 배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임제(臨濟)선사의 ‘수주작처 입처개진(隨主作處 立處皆眞)’의 말씀을 멋지게 번역하여 인용하고 있다. “옛 스승 임제 선사는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정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름다우면 온 세상이 정토라는 뜻이다.
3연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은 마음에 번뇌 망상이 모두 사라지면 그대로가 부처님나라가 되고 스스로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청산(靑山)’은 피안(彼岸)을 상징하는 말이다. 선시와 오도송에서 전형적으로 인용되는 시구이다.
스님의 저서 가운데 최고 역작이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강원과 선원에서 스님들의 교과서 역할을 한 책이다. 스님이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여러 해를 밤낮으로 씨름하였을 것이다. 서산대사의 영향을 받았음은 불문가지이다.〈청허당집〉에 서산대사가 방황을 끝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하면서 쓴 출가시가 있다.
“물을 길어 절로 돌아오다 문득 머리를 돌리니
푸른 산이 흰 구름 속에 있네(汲水歸來忽回首 靑山無數白雲中)
3연은 서산대사의 출가시를 용사(用事)한 것이다. 한 생각을 돌이키면 중생이 부처가 되고, 삼악도가 극락이 된다. 이것이 선가 가르침의 핵심이다. 한 생각을 머리 한 번 돌리듯이 할 수만 있으면 부처되는 것이 식은 죽 먹는 것 보다 쉽다.
생각이라는 것이 지난날 훈습과 집착에 의해서 작동이 되기 때문에 공(空)의 이치를 터득하여 집착을 버려야 가능한 것이다. 스님은 그 집착 가운데 소유의 집착,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셨고, 당신의 삶을 통해서 온전히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이고, 부처는 이제 방금 우리 곁을 떠나 본래 자신의 자리인 자연으로 온전히 돌아간 것이다.
스님은 이 게송에서 당신의 출가 수행 55년의 골수와 저술 30여 권의 핵심 사상을 모국어인 한글 35자로 나타낸 것이다. 오도송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지만 분명 오도송이 틀림없다. 또 조카상좌에게 특별히 써 준 게송이므로 전법게이다. 이 게송은 큰스님께서 현장스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 먼 길을 떠나가시면서 베풀어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이 게송은 우리 선가에서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한시 형식을 갖추는 것을 불문율로 삼아왔던 것을 타파하고 알기 쉬운 한글로 읊은 파천황(破天荒)이다.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으로 보고 국문가사예찬론을 제창했던 김만중(1637~1692)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한시는 한자의 나라인 중국에서조차도 일부 한학자들만의 전유물인 고문(古文)이 되어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 되었다. “죽은 문자로는 결코 살아 잇는 사상이나 문학을 만들 수 없다”고 한 중국 신문화운동의 선구자인 호적(胡適) 선생의 선언처럼 우리 선가도 과거의 전통적인 틀과 관념 속에서 벗어나 자유럽고 자연스런 감정과 느낌을 한글 선시(禪詩)로 묘사하는 전환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법정스님은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통해 한글로도 멋진 오도송이 되고 아름다운 선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또한 우리 선가나 시단에게 준 큰 선물이다.
비구(比丘) 법정(法頂)은 이제 스님이 아니다. 우리 곁에 왔다간 보살이요 부처이다. 스님의 말씀과 저술은 이제 우리 승가 신행의 거울이요 나침반이 되었다. 스님이 몸소 실천으로 행한 가르침과 사상은 부처님과 원효대사처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혜능의 〈육조법보단경〉처럼 〈비구 법정설법경〉이라 칭할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