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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괴상한 건국 이래 초유의 ‘軍 사태’

화이트보스 2011. 5. 15. 09:14

참 괴상한 건국 이래 초유의 ‘軍 사태’

[중앙선데이] 입력 2011.05.15 02:00 / 수정 2011.05.15 08:07

안성규 칼럼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국방개혁 307계획'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 괴상한, 건국 이래 초유의 ‘군 사태’가 벌어졌다. 전직 해ㆍ공군 총장 43명이 국방부의 군 개혁 설명회를 보이콧하고 국방부는 강행할 태세다. 해ㆍ공군 전 총장단은 13일 페이스북에 ‘우린 안 간다’고 올려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다. 보기 안 좋다. 밥그릇 싸움이라고 폄하하고 싶진 않다. 군 개혁은 필요하고, 국방부와 연륜경험의 상징인 예비역의 정책 논란은 건강한 안보를 위한 성장통이다. 그런데 그게 지나쳐 본격 싸움이 된 게 안타깝다.

국방부와 평균 연령 65세쯤 될 ‘노인 총장’들의 싸움은 당초 게임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월 이후의 취재 과정을 돌아보면 청와대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군 개혁 자체에 대한 반대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73개 과제 중 딱 하나, 합참 개혁에 다른 의견이 있을 뿐이다.

합참 개혁안은 ‘좋다’ 혹은 ‘나쁘다’고 쉽게 말 못한다. 예를 들어 각군 총장을 작전에 동원하려는 국방부 안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의사 결정이 늘어지는 건 아닌지, 조직 슬림화는 될지 같은 의문이 생긴다. 육군 출신 합참의장 밑에 해ㆍ공군 총장이 들어가면 각군 특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해ㆍ공군 전 총장들의 걱정도 수긍된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의문과 걱정을 검토하고 혹시 큰 잡음이 나면 청와대가 추스르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드러내 놓고 오기를 부렸다. 개혁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비판을 조정하기보다 배격하고 창피를 줬다. 문민 우위를 ‘청와대 맘대로’쯤 여기는 듯 갈등을 찍어 눌렀다.

전조는 있었다. 1월 9일자로 합동군 개편을 다룬 본지 기사가 나간 뒤 일이다. 취재에 협조한 현역 해군 장교는 “기무사가 발언자 색출에 나섰다”며 불안해했다. 공군 총장에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언론 플레이 말라”고 경고했다는 말도 있다. 우격다짐의 예고편이다.

두 달 뒤인 3월 7일 이명박 대통령이 개혁안의 문제를 짚는 현직 총장들에게 “예비역 같은 말”이라고 했다. 현역ㆍ예비역을 막론하고 ‘잔소리 말라’고 구박한 모욕이었다. 예비역은 그 순간 멀어졌고 현역들도 참담해 했다.

이 대통령이 ‘예비역 같은 소리 하네’ 대신 ‘잘 검토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3월 23일 전직 육ㆍ해ㆍ공군 장성 40여 명이 김 장관 앞에서 집단적으로 개혁 문제를 성토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이 벌어지자 청와대 인사가 또 “반발하는 현역은 항명으로 다스리겠다”고 주먹을 휘둘렀다. 말은 예비역이 했는데 왜 현역을 거론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예비역 장성은 현역의 앞잡이’라고 행간을 읽은 예비역들은 분노했다. “젊은 사람이 감히” “지금이 조선시대냐. 누구를 다스리나”며 속을 끓였다. 발언자로 꼽힌 청와대 인사는 실제로 젊었다.

1주일 뒤 현역 공군 참모총장이 개혁안의 문제를 지적하자 더 높은 청와대 인사가 “강등시켜서라도 개혁하겠다”고 했다. 예비역 장성들은 기자들을 만나 하소연을 했다. 예비역 선배의 수모를 본 해ㆍ공군 현역들은 입을 못 열었다. 정책 대화를 했다면 가라앉을 수 있었을 예비역의 마음이 대통령 이하 청와대 실세들이 함부로 뱉어 낸 ‘말 주먹’에 맞아 멍이 들어 버린 셈이다.

천안함ㆍ연평도 사태에 시달린 나라에서 개혁 자체를 누가 반대하나. 문제는 방법인데 수긍 못하는 개혁 이유를 달고, 비판엔 귀를 닫고, 날짜를 정해 놓고 다그치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해ㆍ공군 예비역 장성들은 이제 ‘개혁 저지’를 위해 야당을 찾는 지경이라고 한다. 한 공군 예비역 장성은 “우리가 진다. 그래도 역사에 의견을 남기겠다”며 비장하게 말했다. 민간인인 그들이 야당을 찾는 것은 자유지만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인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건 ‘충정’이 외면받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만들었으니 청와대가 수습해야 한다. 우선 욕심을 좀 버려야 한다. 73개 개혁과제 중 논란이 극심한 합참 개혁은 빼고 나머지만 먼저 추진하는 게 나아 보인다. 강행하다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상처받을 가능성이 크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예비역 총장들과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다. 천 수석은 최근 기자들에게 “내 업무 중 국방 개혁의 비중이 제일 크다”고 했다. 대통령과 예비역 모두를 난처하지 않게 만들 최고 적임자란 의미다. 천 수석 특유의 소탈함은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군 개혁도 된다.


국제·외교안보 에디터 askm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