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공채1기 이종찬 前원장, 국정원 창설 50년을 말하다
思考가 정치적으로 되면 용단이 필요할때 주저해…
現국정원 지휘부(원장·차장) 프로가 하나도 없어 큰 문제
정보기관, 보고서 쓰는곳 아냐… 활어처럼 펄펄 뛰어다녀야
"저처럼 정치에 오염된 사람은 정보기관 수장 자격이 없습니다."김대중 정부 첫 국가정보원장(1998~99)을 지낸 이종찬(75)씨는 10일 국정원 창설 50주년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보기관 수장은 프로에게 맡겨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육군사관학교(16기)를 졸업한 이 전 원장은 1965년 현역 장교 신분으로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에 공채 1기로 들어가 총무국장과 기조실장을 지낸 정보 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내가 계속 정보부에 남아 수장이 됐으면 몰라도 1980년 정보부를 나와 4선 국회의원을 하고 정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 장관까지 지냈다"며 "사고(思考)가 정치적으로 오염되니 용단이 필요할 때 주저하게 되더라"라고 했다.
'일부 국정원 직원이 유력 대선주자에게 줄을 대는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 전 원장은 "습관화돼서 그런 것"이라며 실제 겪은 일을 소개했다. 그는 "내가 1997년 김대중 후보 대선기획본부장을 할 때였다. 이른 아침 DJ에게 보고하러 갈 때마다 당시 안기부 모 간부가 노란 봉투를 두고 갔던 게 기억난다"며 "분명히 우리에게 도움되는 일이었지만 정보기관은 그래선 안 된다. 국정원장이 되자마자 그 사람을 잘라버렸다"고 했다. 그는 "이 일을 DJ가 섭섭하게 생각했지만 (국정원 간부가) 직무를 밖에 내다 파는 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부하가 구속 상태인 해커들을 빼내 사이버 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까 봐 결단을 못 내렸다"며 "그때 그걸 만들었으면 우리의 사이버 테러 대응 능력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을 것이다. 프로라면 (구속된 해커들을) 빼냈어야 한다"고 했다.
- ▲ 김대중 정부 첫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창설 50주년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정보기관 수장은 프로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에겐 임기란 게 없어야 한다"며 "잘하면 10년이라도 같은 일을 하도록 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몇 기(期)가 차장이 됐다고 그 동기와 선배 기수는 줄줄이 옷을 벗는 관행은 공들여 쌓은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낭비하는 일"이라며 "정보기관엔 기수도 존재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의 프로 정신이 훼손된 이유와 관련, "국정원 지휘부(원장·차장)에 내부 프로가 하나도 없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 전 원장은 "대통령은 부리기 쉬운 고만고만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프로를 쓸 줄 알아야 스스로 높아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행동하는 국정원'을 주문했다. 그는 "이번 빈 라덴 사살 작전은 네이비실이 했지만 그걸 지휘한 건 CIA(중앙정보국)"라며 "정보기관은 주저앉아 보고서 쓰는 데가 아니라 활어들이 펄펄 뛰어다니는 곳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停年)과 인사고과에 매달리는 행정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필요시 초법적인 판단도 내릴 줄 알아야 정보 전쟁터에서 생존할 수 있다"며 "미국이 국제법을 일일이 따져가며 작전을 했다면 빈 라덴 사살은 애당초 불가능했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남북 비밀접촉 폭로에 대해선 "현 정부와는 어떤 형태의 대화도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막 가자는 얘기"라고 했다. 이 전 원장은 "전쟁 중에도 비밀 대화는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시시콜콜 폭로하며 이것마저 없애겠다고 했다"며 "외교 관례에 있어본 적이 없는 일로, 한국은 물론 북한에도 큰 손실"이라고 했다.
그는 "역대 정보부장, 안기부장, 국정원장이 대부분 북한과 비밀접촉을 가졌을 것"이라며 "내가 원장 할 때도 밑에서 '얘기 다 해놨으니 북에 한번 다녀오시죠' 하기에 '북한에 조공(朝貢) 바칠 일 있느냐'며 퇴짜를 놓은 일이 있다"고 했다.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전 원장은 현재 우당기념관 관장과 우당장학회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