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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영혼을 파는 추모정치<칼럼>노무현 지지율 떨어지자 탈당시키던 자들의 ´감탄고토´김영명 칼럼니스트 (2010.04.01 09:32:03) 천하를 두

화이트보스 2011. 7. 13. 14:35

망자의 영혼을 파는 추모정치
<칼럼>노무현 지지율 떨어지자 탈당시키던 자들의 ´감탄고토´
김영명 칼럼니스트 (2010.04.01 09: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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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두고 우방과 마지막 전쟁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까지 간신히 피신해 갔다. 혼자 무사히 탈출은 했지만, 그러나 항우는 오강을 건너야만 살 수 있었다. 그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항우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또다시 군사를 일으켜 재기토록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항우는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내가 피신해서 무얼 하겠는가. 옛날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같이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가 지금은 같이 건너갈 젊은이가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무슨 면목으로 고향 사람을 대하겠는가”라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고는 추격해 온 한나라 군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후세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두목이 ´제오강정(題烏江亭)’이란 시를 지어 항우의 자살을 애석해 했다. 두목은 이 시에서 “승패는 병법의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일이거늘 항우는 부끄러움을 삭이며 참아야 했다. 더욱이 강동 땅엔 호걸도 많은데 이들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오지 않았는가”라고 읊었다.

권토중래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를 안타까워한 것이었다. 어떤 일에 실패한 뒤 힘을 쌓아 다시 그 일에 착수한다는 ´권토중래´의 고사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은 항우는 그렇게 권토중래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노무현 사람들’은 6·2 지방선거라는 전쟁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권토중래하려고 노리고 있다. 빼앗긴 정권을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꿈도 야무지다. 되찾았다가도 빼앗기고 빼앗겼다가도 되찾는 것이 정치권력이기에 노무현 후예들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해서 하등 이상할 건 없다. 문제는 현세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영혼을 파는 추모정치를 하고 나섬으로써 망자를 모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그것도 자살로 비운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던 사람을 선거전에 이용하는 것은 적어도 그를 추종했던 무리들에겐 자유의 영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의 금도조차 지키지 않고 망자를 선거전에 끌어들이는 추모정치는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품위를 훼손하는 경거망동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권토중래를 꿈꾸는 야권, 특히 ‘노무현의 사람들’은 지금 죽기 아니면 살기로 별별 짓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5월 23일로 지방선거 직전에 임박해 있다는 것을 기화로 전직 대통령의 향수를 이용, 추모열기를 되살려 이를 지방선거로 연결해 표를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이른바 ‘추모정치’와 ‘영혼정치’를 하고 있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분위기인데도 선거에 목을 맨 노무현 후예 예비후보자들은 벌써부터 ‘다시 한번 노무현에게 표를 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놓고 있다고 한다. 6·2 지방선거가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노무현 영혼’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고 없는 망자에게 표를 달라? 6·2 지방선거에서 ‘귀신놀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고인이 된 사람을 이렇게 모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혼낸다’더니 딱 그런 꼬락서니다. 표를 모으려고 1년 전에 자살한 전직 대통령을 선거전에 끌어들이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측은지심까지 느낀다.

지난해 9월 발족한 노무현재단은 그 동안 후원금으로 42억 원을 긁어모았다. 그러고는 지난 26일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과 업적을 널리 알리는 공간으로 쓴다며 ‘추모영상관’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건립한다고 밝혔다. ‘님은 가셨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란 추모집도 이미 내놓았다.

지난 5일부터는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을 담은 라디오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다. 오는 5월 23일 서거 1주기에 즈음해 방송이 아닌 영화로 추모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에 있으며, 예술계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뮤지컬 제작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추모행사를 진행하는 주체들은 관련 사업의 핵심 주제가 ‘노무현 가치’와 ‘노무현 철학’ 구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노무현 가치이고 무엇이 노무현 철학인지 알지 못한다. 한 나라의 최고통치권자가 그 나라의 얼굴인 헌법을 일컬어 ‘그놈의 헌법’이라고 깎아내리며 5천만 국민의 얼굴에 먹칠을 하면서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까지 내는 등 법치주의를 능멸한 처사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 ‘노무현 가치’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자기도취와 오만에 빠져 막말을 일삼았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는 10-20%를 오르내리는 지지율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아집과 독선으로 일관하는 정치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노무현 대통령의 막가파식 정치스타일이 ‘노무현 정치철학’인가? 그리고 그러한 가치와 철학을 재생시키겠다니 기가 막힌다.

감탄고토란 말이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이기주의를 뜻한다. 오늘은 동지였다가도 내일은 정적으로 변하는, 이를테면 변덕이 죽 끓 듯 하는 정치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2003년 11월 11일 친노세력들은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민주당을 ‘낡은 지역주의 정치세력’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새롭게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타고 과반의석을 이룬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5월 29일 저녁 청와대 만찬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노 대통령과 감격을 나눴다.

그런데 말이다. 참여정부 중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열린우리당은 ‘노무현과 거리두기’ ‘노무현 때리기’로 돌아섰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연전연패의 책임자로 노 대통령을 지목해 탈당을 압박했다. 결국 2007년 2월 노 대통령은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다. 그해 대선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런 뒤 정동영과 손학규 등 경선후보들은 반노(反盧) 또는 비노(非盧)를 표방했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을 따랐던 추종자들은 지난해 4월 초 노 전 대통령의 비리혐의와 선을 긋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 어떤 의원은 “노무현 색깔 빼기 없이는 민주당의 희망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자 또 태도가 확 바뀌었다. 표변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후신인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는 계승 작업과 추모사업 방침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 분위기를 타고 ‘노무현 곁불 쬐기’에 나선 것이다. 어제까지 ‘노무현 때리기’에 혈안이 됐던 자들이 오늘은 ‘노무현 정신 이어가기’를 외쳐대는 이중인격자들 앞에서 국민들은 연민의 정과 분노를 함께 느낀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지조 없는 정치인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들을 경멸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는 "오늘날 정치를 하는 것은 이미 학식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은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라며 정치인들을 경멸했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도 "정치는 배울 수가 있는 학문이 아니다. 정치는 기술이지, 각오가 없는 자는 멀찍이 있는 편이 낫다"고 했다. 만년의 클레망소는 "당신이 아는 가장 나쁜 정치가는 누구냐"는 물음에 그는 "그건 참 어려운 문제다. 이놈이야말로 가장 나쁜 정치가라고 결정한 순간에 더 나쁜 놈이 꼭 나오게 마련이니까"라고 대답했다. 정치인은 그런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경멸한다.

제발이지 노무현 후예들은 전직 대통령을 이용하는 파렴치한 선거전략으로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진보좌파 구 권력층은 영혼을 파는 일이 있더라도 권력을 다시 잡겠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의 영혼,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정권을 다시 찾겠다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 지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글/김영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