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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
[아시아투데이=송기영 기자] 지난해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승조원 104명 가운데 58명이 구조됐다. 그러나 나머지 46명은 두동간 난 배와 함께 3월의 찬 바닷속에 수장됐다. 6.25 이래 국군의 최대 피해였다. 범인으론 ‘북한’이 지목됐다.
대북 포용론은 주장하던 민주당은 수세에 몰렸다. ‘과거 좌파 정부 10년동안 퍼주기한 댓가가 어뢰로 돌아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6
·2 지방선거를 2달여 남긴 시점에서 ‘북풍(北風)’이 불기 시작했다.
민주당 등 야권에겐 악재도 그런 악재가 없었다. 당시 여권은 세종시와 4대강, 봉은사 외압설, MBC 인사 개입설 등 대형 악재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악재는 천안함과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주당에서는 ‘하늘이 한나라당을 돕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정치부 기자들 중 ‘지방선거 야권 완패’를 의심하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각종
여론조사도 야권의 완패를 예고했다. 야권은 패색이 짙어졌다.
그런데 지방선거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자, 야권은 ‘전쟁과 평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서울시에 ‘전쟁 NO! 평화 OK'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하루아침에 한나라당은 ‘전쟁을 부르는 세력’으로 낙인 찍혔고, 민주당은 평화세력으로 부상했다. 좌파진영의 새로운 선거 프레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한나라당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전쟁과 평화냐’리며 이같은 선거 프레임를 얕잡아 본 것 같다.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전쟁과 평화’라는 선거 프레임이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먹힐 것이라고 봤다. 지금 젊은
세대들의 안보 의식이 부족하다곤 하지만 6.25 전쟁의 상흔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정서다. 한나라당이 얕잡아 볼 일은 아니었다.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대승했다. ‘전쟁과 평화’라는 선거 프레임이 야권을 선거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다만, 천안함 악재를 털어내는 데는 한몫 톡톡히 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도 야권의 싸움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계적 무상급식이냐, 서울시 의회의 전면 무상급식이냐’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투표를 하지 말라고 나선 것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참 나쁜 투표라면서.
투표 거부라. 반대 입장이었다면 한나라당은 죽어다 깨어나도 생각 못할 선거 프레임이다.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투표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트위터에서는 투표 불참 운동이 벌어졌다. 최종 투표율은 25.7%. 서울시민의 1/4만이 투표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이를 두고 “야권은 오 시장이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이려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투표 당일 유권자들은 투표소로 나서는 것을 눈치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좌파의 싸움 방식이다. 좌파는 어떻게 하면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지 잘 안다. 나서고 움직이고 조직하고 변화하고 싸울 줄 안다. 그래서 이기는 법도 안다.
반대로 우파는 몸이 무겁다. 좌파 진영에서 무상급식 투표 거부 운동을 벌이자 그제서야 우파는 부랴부랴 투표 참여 운동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투표 참여냐 거부냐는 좌파가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우파는 스스로 그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에 침묵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모든 언론이 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 이례적이면서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주목할 대목이다.
10월부터 정치권은 총 3번의 빅 선거를 치러야 한다.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 12월 대통령 선거다. 그런데 아무래도 박 전 대표가 야권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좌파는 싸움에 능하다. 지금 박 전 대표의 침묵은 내년 대선에서 수많은 ‘말’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좌파가 박 전 대표의 침묵을 어떤 선거 전략으로 이용할지 모를 일이다.
박 전 대표도 싸움에 능한 편이다. 오죽하면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까지 생겼을까. 박 전 대표는 2년 4개월의 대표시절동안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40대 0 신화'를 썼다.
그러나 그때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권력을 쏠림현상을 경계하는 성향이 짙어 선거는 늘 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지금은 민주당이 야당이다.
지금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 후보로 부동의 1위인 것은 확실하다. 견제할 만한 인물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의 수는 야권이 몇수 위다. 박 전 대표는 과연 좌파를 이길 수 있을까. 나서고 움직이고 조직하고 변화하고 싸울 줄 아는 좌파에게 박 전 대표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송기영 기자 rckye@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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