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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의 무거운 어깨와 밝지 않은 내일

화이트보스 2011. 10. 1. 10:03

保守의 무거운 어깨와 밝지 않은 내일

  • 강천석 주필

입력 : 2011.09.30 21:08 / 수정 : 2011.09.30 22:35

강천석 주필

진보·좌파 내년 구호는 큰 복지·남북 문제

박근혜 전 대표·보수세력 생각과 태도 달라져야

범(汎)보수 시민단체의 서울시장 후보 이석연 변호사가 29일 사퇴했다. 같은 날 범진보 시민단체의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 변호사 선거자금 펀드로 모금 시작 47시간 만에 45억원이 쏟아져 들어왔다는 집계가 나왔다. '한국 보수의 고질(痼疾)인 분열병이 다시 도졌다' '허우대만 멀쩡하지 근력(筋力)이 달린다'는 꾸중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박 변호사 창구에 등치고 간 빼먹는 론스타가 '아름다운 가게'에 '아름답지 못한 헌금'을 했다는 소문도 함께 쌓이는 데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가파른 기세까지 더해져 야권 단일후보의 행방조차 섣불리 점치기 어렵다. 야풍(野風)이 드세지만, 씨름은 정작 이제부터다.

선거에서 '시대의 바람'을 등에 받는 쪽은 가속기의 페달을 밟고 가슴에 맞는 쪽은 브레이크가 걸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총선·대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는 풍향계(風向計)다. 이명박 정권과 3년 반을 동거(同居)해 본 국민은 '국가는 회사처럼 운영될 수 없고 운영돼서도 안 된다'고 이미 합의한 듯하다. 보수든 진보든 이견(異見)이 없다. 회사의 이익 배당과 인사(人事) 권한은 대주주에게 많이, 소액주주에겐 적게, 그리고 주식이 없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게 법이라 불평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국가를 회사로 여겼던 이 정권도 뒤늦게 '친서민(親庶民)'이란 지우개로 '기업에만 프렌들리(Friendly)'란 굵은 글씨를 지워보려 나섰지만 시늉으로 끝나는 듯하다. 오히려 한국 자본주의에서 성장과 분배는 각기 다른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라는 불신만 키웠다. 보수엔 이게 다 역풍(逆風)이다.

한국 정치는 이렇게 얼떨결에 '정치 문제=복지 문제' '선거공약=복지공약'이라는 시대와 만났다. 정치에 대한 간단한 정의(定義)는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얻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복지도 다를 바가 없다. '사회의 경제적 성과를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복지는 정의(正義)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는 복지국가를 종합 설계해 본 사람도, 시공해 본 사람도, 공사가 설계대로 정확하게 진행되는지를 감독해 본 사람도 없다. 건강보험, 국민연금·공무원연금, 기초노령연금 작업에 손을 대봤다는 사람들이 면허증도 없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복지의 큰 그림 작은 그림을 멋대로 그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손댔다는 보험과 연금 쪽으로 초대형 적자(赤字)라는 눈사태가 굴러오고 있는 걸 국민이 모르는 줄 아는 모양이다.

복지국가는 건물의 무게를 조금 잘못 계산해도, 철근을 약간만 빼먹어도, 감독 과정에서 작은 부실을 눈감아도 폭삭 주저앉고 만다. 앞서간 복지국가의 역사가 경고하는 사실이다. 유럽 복지국가는 1945년부터 1차 석유위기가 덮친 1973년까지 계속된 현대자본주의의 유례없는 장기 대호황(大好況) 기간에 착공됐다. 그러나 1974년 경기침체에다 인플레이션이 겹쳐 밀려들면서 복지국가들의 GNP 성장률(4.9→2.4%)·생산성(3.9→1.4%)은 반 토막이 나고 인플레이션(3.9→10.4%)·실업률(3.2→5.5%)은 두 배 치솟았다. 설계가 잘못된 복지국가는 건물 전체가, 시공과 감독이 부실했던 나라는 여러 개 층(層)이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아래층 사는 사람일수록 피해가 컸다.

유럽 복지국가는 1980년대에 설계 변경, 기반(基盤) 강화 등 대대적 보수(補修) 공사를 거쳤지만 거의 10년 주기로 밀려드는 세계 경제 위기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 영국의 대처리즘(Thatcherism)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도 멋진 연설문 몇 개를 남겼을 뿐 한번 바뀐 나라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표(票)가 만사를 결정하는 정치 시장(市場)에서 복지에 손대는 건 자살이기 때문이다. 유럽대륙형·지중해 연안국가형·북유럽형·영미(英美)형 복지 할 것 없이 보수 공사로 빤한 날이 없는 게 세계의 현실이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88%(2010년)에 달한다. 여느 OECD 국가의 2배가 넘는다. 세계 경제 변화에 그만큼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는 체질이다. 이런 연약(軟弱) 지반 위에 복지국가를 건설할 때는 철저한 내진(耐震) 설계는 목숨과 같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걸 챙기지 않는다.

진보·좌파 진영은 내년 총선과 대선용(用)으로 '당장 큰 복지'란 깃발과 '남북(南北), 이대로 갈 수는 없다'라는 구호를 정해놓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런 깃발과 구호가 넘실대는 선거판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를 통한 지속 가능한 정의의 실현'이란 생각과 '북한을 상대할 새로운 비전'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 박 전 대표가 보수의 중심(中心)으로 다시 서고 보수세력들이 그에게 정책과 노선의 선택 범위를 넓혀주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보수의 어깨는 무겁고 내일이 밝아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짜고 밀어주다 거덜 난 미국 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