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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부러지면 로또"

화이트보스 2011. 11. 5. 10:04

뼈 부러지면 로또"

폐광으로 쪼들린 태백… 일부 주민들, 죄의식 옅어져
적발 403명 중 76%가 여성, 진폐환자 많은 폐광 지역 주민 상당수가 보험지식
병원과도 이해관계 맞아 옮겨다니며 1~2주씩 입원
조선일보|
태백|
입력 2011.11.05 03:08
|수정 2011.11.0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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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 에서 발생한 400여명 연루 보험사기 사건은 생활고에 시달린 주민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들면서 지역 사회에 급속히 퍼졌고, 같은 범행을 반복하면서 죄의식도 점차 옅어졌다는 게 경찰 조사 결과다. 가담 주민 대부분은 보험설계사나 병원에서 보험사기에 대한 정보를 들은 것으로 파악됐다.

가짜 환자와 병원 이해관계 맞아

↑ [조선일보]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를 받기 위해 가짜 환자들을 모르는 척하고 받아들인 태백시의 한 병원. /홍서표 기자 hsp@chosun.com

전 보험설계사 이모(여·46)씨는 2005~2007년 6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2007년 10월쯤 이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병원을 찾아 입원 수속만 하고 바로 병원을 나와 일상생활을 했다. 서류상 입원을 하는 '차트형 환자' 사례다. 이씨는 입원 기간이 21일(3주)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병원을 찾아 퇴원 수속을 하고 입·퇴원 확인서를 보험회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타냈다. 통상 단순 염좌(삠)의 경우 병원 한 곳에서 입원 기간이 3주가 지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주는 요양급여비 지급이 까다로워지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번에 문제가 된 3곳의 병원들을 옮겨다니며 1~2주씩 입원하는 수법으로 모두 15차례에 걸쳐 8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병원도 이런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짜 환자는 보험금을 받고 병원은 요양 급여비를 챙기는 등 이해관계가 맞아 범행이 가능했다. 전형적인 '환자 돌리기' 수법이다.

보험설계사와 사채업자가 유혹

태백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이모(여·56)씨는 10여 년 전부터 15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보험사기의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 이씨도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설계사로부터 "쉽게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꾐에 넘어가 2005년 2월 "산에서 넘어졌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 이후 이씨는 올 3월까지 허리 통증과 위궤양 등을 이유로 41차례나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3억33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입원 기간에도 이씨는 음식점에서 일했다.

1억원가량 도박 빚이 있던 김모(63)씨도 2007~2008년 사이 5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빚을 지고 있던 김씨가 사채업자로부터 보험사기에 대한 정보를 듣고 보험에 가입한 것이라고 경찰은 말했다. 2008년 5월쯤 처음 가짜 환자로 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이후 14차례나 병원 3곳을 옮겨 다니며 41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빚을 갚고 생활비로 썼다.

폐광으로 인한 생활고가 한 원인

대표적 탄광 도시인 태백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10만명이 넘는 부유한 도시였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하면서 지금은 인구 5만여명으로 반 토막 났다. 지역경기도 급속히 위축돼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도 늘어났다. 먹고살기 어려워진 점도 주민들이 쉽게 보험사기에 빠진 한 요인이라고 경찰은 말했다.

이번에 적발된 보험설계사와 주민 403명 중 76%(306명)가 여성이었고 무직(62.3%)과 일용직(20.3%)이 대부분이었다. 연령도 50대가 48.4%로 절반을 차지했고 가짜 환자로 위장하기 쉬운 단순염좌가 77.2%였다.

지급받은 보험금 액수는 1000만~3000만원 사이가 14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1000만원 이하 81명, 3000만~5000만원 74명, 5000만~1억원 66명, 1억원 이상도 33명이나 됐다. 경찰은 "태백이 폐광지역으로 진폐환자가 많다는 특성이 있고, 따라서 주민 상당수가 산재처리를 경험하면서 보험에 많은 지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태백에서는 '골절'이 바로 '로또'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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