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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들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화이트보스 2011. 11. 22. 11:05

진보교육감들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입력 : 2011.11.21 23:18

김형기 논설위원

작년 이맘때 미국 매릴랜드주(州) 볼티모어시(市)의 한 40세 고등학교 교사가 1학년 학생에게 폭행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복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학생에게 "교실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학생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며 교사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벽을 등진 교사가 두 손을 쳐들고 다급하게 "항복(I surrender)"을 외쳤지만 아이는 사정없이 강펀치를 날렸다. 교사는 눈 주위 뼈가 함몰하고 턱뼈가 으스러져 대수술을 받았다.

미국에선 이런 사건이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2010 학교 범죄 지표'를 보면 한해 14만5100명의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27만6700명이 흉기를 든 학생에게 협박을 받았다. 교사 100명당 4~8명꼴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일을 강 건너 불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됐다. 3주 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교감 폭행 사건은 등장인물만 다를 뿐 볼티모어 고교 사건의 복사판이다. 교감이 무단조퇴하는 학생을 복도에서 붙잡아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담배를 압수하자 학생이 욕설을 퍼부으며 교감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배를 발로 걷어찼다. 과거에도 우리 학교에 탈선학생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눈 한번 부릅뜨고 목소리 한번 높이면 대다수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는 시늉은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집계한 작년 학생의 교사 폭행·협박 사건은 146건, 욕설·폭언은 330건이었다. 미국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숫자지만 중요한 건 추세다. 폭행·협박은 5년 전에 비해 21배, 욕설·폭언은 12배로 늘었다. 지난 5년간 교권침해 사건의 절반이 작년 한 해에 일어났다. 일부 진보교육감들의 체벌금지 선언,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몰고 온 폭풍이다. 이전에도 체벌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거나 장려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체벌금지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명제다. 하지만 그게 계기가 되어 학생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선생님이나 학교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 문제다.

오래전에 교사가 학생 통제를 포기한 미국에선 교실에서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일차로 생활지도 전담교사에게 보내고, 생활지도교사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교장에게, 교장도 어쩌지 못하면 관할 교육위원회로 미룬다.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은 학교에 상주하는 경찰에 넘긴다. 학교범죄가 많은 로스앤젤레스 학교경찰국 같은 경우는 1998년부터 권총보다 살상력이 5~6배 강한 산탄총을 소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도 어느 날 이렇게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교사 한 사람이 학생 수십명을 가르치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학생들은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다. 학생은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스승은 제자 교육에 기꺼이 무한책임을 지는 우리 특유의 학교문화 덕분이다. 한국의 '교사중심 교육(teacher-centered education)' 시스템은 세계 교육계의 관심사이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선 교사들을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부른다"며 부러워한다. 이걸 깨뜨리는 것은 쉽지만 한번 깨지면 다시는 되돌리기 어렵다. 진보교육감들은 임기 동안 이것저것 이념(理念) 실험을 해보다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바람에 우리 학교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