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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가지표' 찾기 논란

화이트보스 2011. 12. 9. 11:35

'새 국가지표' 찾기 논란

  • 조형래 산업부 차장

  • 입력 : 2011.12.08 23:02

    조형래 산업부 차장

    GDP(국내총생산) 성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국가지표 찾기가 유행상품이 된 느낌이다. 몇 년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히말라야의 소국(小國) 부탄이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웃고 넘겼지만, 2년 전쯤부터 오바마 미국 대통령, 캐머런 영국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이 잇따라 새로운 국가지표 찾기를 주창하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탐욕과 효율을 강조하는 신(新)자유주의에 대한 자성(自省)과 맞물려, 새로운 국가지표 찾기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빈곤·분배 연구의 대가인 아마르티아 센 등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 같은 논의에 동참했다.

    영국 정부는 최근 자국민(自國民)의 웰빙(well-being) 수준을 측정하는 10가지 지표를 공개했다. 소득·교육·건강, 일의 만족도 등 개인적인 평가요소는 물론이고 정치체제·경제·환경 등 공적인 요소들도 포함됐다. 영국 정부는 이들 지표 개발을 위해 지난 1년간 3만4000여명에게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가"를 물었고 치열한 전문가 토론도 벌였다.

    실제로 GDP 성장률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국가지표이긴 하지만 허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자산 가치의 증가만 측정할 뿐, 부(富)의 분배나 교육·건강 등 삶의 질(質)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들을 간과한다. 심지어 GDP와 삶의 질이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다. 교통체증으로 인해 운전자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휘발유 사용 증가로 GDP는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GDP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가지표 찾기에 냉소적인 시각도 많다. 사람들의 주관이 개입된 행복지수로 어떻게 현재의 경제 상황을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조차 "새로운 단일 지표를 만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고, 일각에서는 "비현실적인 일이며 나쁘게 보면 가난과 저성장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더구나 선진국들의 경제현실은 그 나라 정치인들이 한가하게 국가지표 타령이나 할 때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 5년 만에 국가부채가 6000억유로(약 910조원)나 늘어서 국가부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기껏해야 0.3~0.4%인 분기 GDP 성장률이 발표될 때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프랑스 주식과 채권을 무차별로 내던지는 사태가 올해 내내 반복됐다. 심지어 사르코지가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쥔 독일 메르켈 총리에게서 "프랑스 재정 감축계획을 직접 갖고 오라"는 말을 듣는 굴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일자리 창출을 담당하는 기업에 있어서도 성장을 대체할 만한 동력은 아직 없다. 지난 상반기 고용을 많이 한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성장 없이 고용이 늘어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한 대기업 회장은 "기업이 성장을 계속한다면 걱정할 게 없다. 반대로 성장이 멈추면 모든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장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