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전 의원은 2008년 2월 기소됐다.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건의 주범 김경준(45)씨 변호인이 사임한 것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가 구속되는 상황까지 고려한 것 같다”고 밝히는 등 사실 검증 없이 이 후보의 주가 조작 및 횡령 가담 의혹을 제기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였다. 1·2심은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피고인과 주변 인물들이 재판부 성향을 거론하는, 유례를 찾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8월 선고기일이 연기되자 정 전 의원 등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 출연진은 주심 이상훈 대법관을 ‘진보적 양반’으로 치켜세웠다. “(무죄로) 파기 환송된다는 걸 아시고 가카(각하)께서 막으셨다”고 했다. 선고기일이 다시 22일로 잡힌 뒤에는 ‘호외’ 방송과 집회를 통해 “이 대법관을 믿는다”고 했다. 대중의 마음에 재판 결과에 대한 예단(豫斷)을 심음으로써 재판부를 압박한 것이다. 그런데 결론이 ‘유죄 확정’으로 나오자 이번엔 또 다른 정치적 배경이 있는지가 의심의 도마에 올랐다. 문제는 앞으로 중요 사건 재판마다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토양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모든 책임을 정 전 의원 등에게 돌릴 순 없다. 대법원이 법 위에 잠든 사이에 빚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8년 12월 2심 판결 후 만 3년이 지나도록 무죄인지, 유죄인지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선거법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대법원이 우리 앞에 내민 것은 9쪽 분량의 판결문이었다. 그마저도 피고인 측 상고 이유와 기존 판례를 요약한 뒤 “원심 판단에 위법이 없다”는 문구만 나열했다. 판결문을 받아 본 정 전 의원의 변호사는 “사건을 몇 년간 미루면서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고 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