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합의처리 또 실패
30일 예산안 처리 앞두고… 野, 농협 지원금 증액 요구 31일 여당서 野요구 수용후 예산안 처리 다시 합의했지만 막판 론스타 문제로 또 결렬
계속 후퇴만 한 與 - 4대강·제주해군기지 대폭삭감… 비대위, MB예산 사수 뜻 없고 FTA뒤 강행처리 부담 느낀탓
국회는 2011년 마지막 날인 31일 밤 11시 23분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신년 예산안을 표결 처리했다. 정부안(案)에서 7000억원이 줄어든 325조4000억원 규모다. 한나라당의 '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는 야당 요구에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예산 등을 대폭 줄이고, 야당과 여당 내 쇄신파의 '고소득자 최고세율 신설' 주장에 동의해주면서 어렵게 예산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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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요구에 계속 밀린 여당당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달 20일 원내대표 회담에서 30일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양당이 처리 시한으로 정한 30일 오후에는 18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오후 4시 15분, 민주당이 합의 처리의 조건으로 농협 구조 개편 예산 조정을 요구하고 나오면서 합의는 무산 위기를 맞았다. 야권 통합에 따라
한국노총 몫으로 참여한 김문호 최고위원이 "(농협 관련 예산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당 지도부를 압박한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농협 노조원 등과
김진표 원내대표실 점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예산안 처리의 조건으로 농협에 대한 정부 지원금 규모를 1조원(4조→5조원) 늘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한나라당이 이를 거부해 30일 예산안 처리는 무산됐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이튿날인 31일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31일 예산안 처리'에 다시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여야 합의로 예결위 전체회의까지 통과한 예산안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민주당이 이번에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과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다시 벽에 막혔다. 이 역시 김문호 최고위원이 요구한 사안이었다.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나 시간상 더는 협상이 어렵다"고 보고 밤 10시 45분 민주당 불참 속에 본회의를 시작해 11시 23분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고, 민주당은 표결 순간 전원 퇴장했다. 이에 따라 4년 만의 첫 여야 예산안 합의처리는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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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예산은 벗어던진 한나라 비대위민주당은 이날 예산안 통과를 몸싸움으로 막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야당과의 몸싸움을 피하는 대가로 이명박 정부의 역점 사업 예산을 대폭 깎았다. 4대강 저수지 둑 높이기에서 2000억원, 제주해군기지 공사에서 1278억원, 해외자원개발 출자에서 1600억원 등 예산을 각각 야당의 요구대로 삭감했다. 또 대학등록금 부담완화(3323억원), 일자리 지원(4756억원), 영·유아 무상보육(3752억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비 농어업지원(3035억원), 무상급식(1264억원) 등 민주당이 증액 필요성을 제기해온 예산은 늘렸다.
이런 까닭에 여권에선 "여당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야당에 굴복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작년 11월 22일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단독처리에 항의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시키다 지난달 21일 국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예산안과 미디어렙법안 처리 문제 등에서 여당과 합의했다가 뒤집기를 반복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여당으로선 한·미 FTA 비준안에 이어 예산안 처리에서도 파행이 빚어질 경우 내년 총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되도록 야당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또 "외부 출신 비대위원이 주도하는 비대위에서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당이 'MB예산'을 지킬 의지가 있겠느냐"고 했다. 정두언 의원은 "예산안과 함께 통과된 고소득자 증세안을 통해 과거 (이 대통령 중심의) 한나라당은 종언(終焉)을 고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