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고령화에 대한 준비

대구서 학원하던 40대 미혼녀가 상주로 간 까닭

화이트보스 2012. 4. 3. 10:57

대구서 학원하던 40대 미혼녀가 상주로 간 까닭

  • 이충일 기자

  • 입력 : 2012.04.03 03:10 | 수정 : 2012.04.03 06:35

    [이충일 도시문제 전문기자 심층 리포트]
    부활하는 농업도시… 상주가 살아난 세 가지 이유

    경북 상주시가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농업 수도(首都)'를 선포했다. 아직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자도 뒤늦게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자전거나 곶감 정도로 알려진 경북 내륙 상주가 '대한민국 농업 대표 도시'를 자임했다니…. 좀 엉뚱한 한편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상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숱한 농촌도시들이 대도시 과밀화의 그늘에서 고령화와 저소득에 시달리며 고사(枯死)를 향해 추락하고 있다. 혹시 상주가 그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가진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사람 - 전국 최고의 귀농지]

    도시에 지친 부부, 닭 키우고 40대 미혼女, 농산물 쇼핑몰
    3년간 359가구 새삶 찾아 귀농
    市, 농촌 정착 정보센터 운영… 농지·내집마련 융자 지원도

    동갑 부부 이용선·백승희(48)씨는 9년 전 두 아들을 데리고 상주 외서면의 한적한 계곡에 둥지를 틀었다. 남편 이씨는 "서울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로비나 하고 하청업체나 상대하는 소모적 삶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고, 아내 백씨는 "오직 대입을 위해 아이들을 닦달하고 스스로도 무의미해져가는 삶에 대안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주업은 양계다. 천연기념물 오골계 500마리와 토종닭 30마리를 놓아 키워 알을 거둬 판다. 이씨는 "500마리 이상은 힘에 부치고 환경에도 안 좋을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둘은 인근 4개 초·중학교에 방과후학교 교사로도 나선다. 남편은 목공, 아내는 수공예를 가르친다. 여기서도 약간 부수입이 생긴다. 아내는 주민 요가교실도 연다. 마을도서관 개관도 준비하고 있다. 상주와는 무관하던 부부지만, 부부는 어느덧 없어선 안 될 구성원이 됐다. 부부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없을 순 없지만 서울생활에 비하면 행복지수 99%"라고 했다. 기자가 "나중에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불만갖지 않겠느냐"고 묻자 "아이들도 여기 생활에 대만족"이라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부부는 홀로 된 양측 어머니를 모실 별채도 짓고 있다. 작년에는 소박하되 마음 편한 이들을 부러워한 후배 부부가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와 바로 옆에 집을 지었다.

    오골계를 키우고 동네 아이들도 가르치는 이용선·백승희 부부. 둘의 탈(脫)도시 이후 여러 명이 농촌행을 결정했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상주 외남면에서 우연히 40대 초반 동갑인 두 미혼 여성을 만났다. 마산과 대구 출신인데, 대구에서 논술학원을 함께 운영하다가 4년 전 이사 왔다. 마산 출신 김영미씨는 수학, 친구는 국어 전공이다. 김씨는 "나무가 좋아 상주에 뽕나무를 심고 관리차 드나들다가 아예 들어와 살게 됐다"며 "템포 느린 농촌의 라이프스타일이 우리에게 딱 맞는다"고 했다. 둘은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고 곶감도 말려 판다. 얼마 전에는 이웃 8가구를 돕기 위해 도농(都農) 직거래 창구 '호호 줌마스'를 만들었다. 배·곶감·오디·쌀·새순 등을 서울·부산·대구·마산으로 보낸다. 아직은 주로 지인들로부터 전화 신청을 받아 부치지만 곧 인터넷장을 개설해 규모를 키울 생각이다. 대부분 노인이던 마을은 '젊은 여성들'을 식구로 맞으면서 부쩍 활기에 넘친다.

    2000년 이후 603가구 1722명이 상주로 귀농·귀촌했다. 특히 2010년에만 162가구 355명이 오는 등 근래 3년간 359가구가 정착하며 전국 최고의 귀농지가 됐다. 이들은 주로 곶감·고랭지포도·시설오이 같은 고소득 작물을 재배한다. 특징을 찾는다면 베이비부머의 귀환이다. 설동수 상주시 농업정책과장은 "어릴 때 부모 따라 도시로 도시로 줄지어 떠났던 베이비부머들이 농촌에 활력을 주는 새 주역으로 떠오른 셈"이라며 "평생 상주와 아무 관련없던 사람도 많다"고 했다. 상주시는 이들의 정착을 위해 정보센터와 위원회, 그리고 도농교류운동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또 2007년 이안면에 30가구 귀농마을을 만든 데 이어 중동면과 모서면에도 전원마을을 만들어 총 809가구를 유치할 계획이다. 내 집 마련 및 농지구입비도 좋은 조건으로 융자하고 있다.

    [소득 - '억대 농가' 최다]

    오이 키워 연소득 1억원, 배농사 지어 1억5000만원… 이렇게 버는 집이 1508가구
    전국 어디든 2시간 물류 거점… 시장·공무원은 해외서 판촉

    "시골생활도 수입이 있어야 행복한 겁니다. 제가 한 해 5000만원 이상 버는데, 도시 친구들이 다 부러워해요." 군 제대 후 고향 상주를 떠났다가 5년 전 돌아온 박세철(58)씨는 요즘 번듯한 벽돌집을 짓고 있다. 그동안은 빈 농막을 고쳐 아내와 둘이 지냈다. 아들은 구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딸은 진주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박씨는 대구에서 병원부식 납품업으로 한때 돈을 꽤 벌었다. 하지만 주식에 손댔다가 망한 뒤 재산을 정리해 돌아왔다. 여기서도 처음엔 애완견을 사육하다가 실패해 고난을 겪다가 농업으로 눈을 돌려 벼·곶감·복숭아로 기반을 다졌다. 그간 벌써 이장을 지냈고, 예비 귀농인을 위한 상담에도 적극 나서는 상주의 '귀농 전도사' 가운데 하나다.

    장동태(54)씨는 상주 신봉동에서 조선오이를 재배한다. 비닐하우스가 두 개인데, 하나는 거의 축구장 만하고 다른 하나는 그 절반 크기다. 특이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높이다. 보통 하우스는 3m 정도인데, 장씨 것은 그 두 배에 가깝다. "채광량을 늘려서 더 경쟁력 있는 오이를 키워내기 위한 투자지요. 나중에 나이 들어 오이가 힘에 부치면 손이 덜 가는 유실수로 바꿔 심을 계획까지 반영한 겁니다." 그 역시 도시를 접고 마흔살 무렵에 귀농했다. 폴리페놀이 첨가된 장씨 오이의 요즘 수확량은 하루 4000개 정도다. 상주를 떠나온 날 저녁, 식당에 갔다가 장씨가 준 오이를 테이블마다 돌렸다. 다들 "이 오이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농업은 상주의 기간산업이다. 총 10만여명 가운데 36%가 농가 인구다. 농가 수와 인구, 경지 면적, 농기계 수 등 대부분이 전국 최상위권이다. 오이·육계·양봉·곶감은 전국 1위, 한우는 2위, 쌀·배·사과·포도도 고순위의 산지다. 농축 총생산은 1조원대. 특히 연소득 1억원 이상인 '억대 농가'가 1508가구로 전국서 가장 많다. 모동면 오이농 이용만씨는 순익 1억원, 남적동 배농 박오식씨는 1억5000만원, 모서면 사과농 안동욱씨는 9000만원을 번다. 딸기를 1m 높이 선반에서 재배하는 청리작목반 소속 13농가는 작년에 순익 8억원을 기록했다. 가구당 6200만원꼴이다. 농림수산식품부 집계를 봐도 억대 농업인 10명 가운데 한 명은 상주에 산다. 이들의 주업은 축산·과수·채소·벼의 순. 상주가 우리나라 복판에 있고, 중부내륙 및 청원~상주 고속도로 등에 힘입어 전국 어디든 2시간대면 가는 물류거점이 된 것도 힘이 됐다. 농산물 수출의 주력은 배다. 사과·국화·곶감·막걸리·쌀·포도도 있다. 그런데 작년 한 해 42%나 성장하며 수출 1000만불 시대를 열었다. 시장과 공무원들이 미국과 대만 등을 다니며 판촉에 나선 효과가 컸다고 한다.

    [산업 - 명주·곶감 등 특화]

    가을이면 명주패션 페스티벌, 우주식품 곶감초콜릿도 개발

    상주 함창읍에는 허씨비단직물이라는 명주공장이 있다. 기계 베틀 25대로 원단을 만든다. 소량 다품목이 전략이다. 어머니 가업을 이어 35년째 일해온 허호(53) 대표는 요즘 염색 재미에 푹 빠졌다. 직접 생산한 명주에 감물과 햇빛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문양을 가진 스카프 등을 만든다. 상주는 1970년대 전국 최대 양잠도시였다. 고치 생산이 한 해 1000t이 넘었다. 하지만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급격 쇠퇴했다. 그래도 뽕·누에·고치에 이어 생사·원단·완제품까지 만드는 전국 유일 도시다. 함창읍과 이안면에는 이런 명주공장이 여럿 있다.

    폴리페놀 함유 조선오이를 하루 4000개가량 수확하는 신봉동 장동태(맨 뒤)씨의 비닐하우스. 그는 귀향 10년 만에 상주를 대표하는 농업인의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허씨는 "내 고장 전통 상품이자 자랑인 명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알리는 게 내 임무인 것 같다"고 했다. 상주시는 가을이면 전국명주패션디자인 페스티벌을 연다. 명주테마파크와 박물관도 짓고 있다. 앞으로 곤충자원화센터를 만들어 체험관광을 겸한 양잠산업의 새 메카로 키우려고 한다.

    상주특산물로 자리 굳힌 곶감도 변신하고 있다. 곶감과자·곶감주스 같은 가공식품에 이어, 최근에는 원자력연구원과 협력해 우주식품으로 곶감초콜릿을 개발해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말도 상주가 관심 갖는 산업이다. 승마가 골프에 이어 새 인기 레저로 부상하면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봤다. 일단 승용마센터, 비육마단지, 낙동강승마길, 호스파크를 만들어 말산업 중심지로 키울 계획이다.

    경상북도 및 농림수산식품부와 공동으로 상주에 국립농업생명미래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농업을 쉽게 이해할 전시·교육·체험기능과 신품종·신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기능을 맡는 국립기관이다. 성백영 시장은 "농업이 갖는 다양한 가치를 인식시켜 피폐해져 가는 농촌도시들을 살려내야만 나라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며 "농업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희망산업으로 자리 잡도록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투자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했다.

    대구서 학원하던 40대 미혼녀가 상주로 간 까닭
    이충일 기자 ci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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