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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외치더니 선거 끝나자 ‘중도’ 강화… 오락가락 민주당

화이트보스 2012. 4. 22. 21:26

‘진보’ 외치더니 선거 끝나자 ‘중도’ 강화… 오락가락 민주당

안홍욱·김진우·박홍두 기자 ahn@kyunghyang.com
ㆍ원내대표 경선도 비전보다 ‘합종연횡’ 난무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은 20일 오전 5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2012 대선일기’란 글을 올렸다. 김 의원은 “우리는 총선에만 진 것이 아니라 총선 이후에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총선의 아우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독선·교만·아집이 판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나도 제대로 된 총선 평가, ‘내 탓이오’의 자기반성이 없는 정당이 수권할 수 있을까”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의 적은 명명백백히 새누리당도 박근혜도 아닌 우리 자신”이라며 “민주당의 쇄신이 선결이고 본질”이라고 말했다.

4·11 총선 후 민주당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당 강령으로 채택한 친복지·친노동 정책 노선과 야권연대에 책임을 돌리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단적이다. 정작 제대로 된 공약이나 행동 없이 ‘말의 성찬’과 ‘좌클릭’만 앞세우다 총선 패배 후에 다시 흔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당권·대권만 향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벌어지는 풍경들이다.

민주통합당 문성근 대표권한대행(오른쪽)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손을 잡고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은 총선에서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핵심축으로 하는 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의 ‘1%(부자·대기업)’ 정책 기조를 비판하고 ‘99%(서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통합진보당, 시민사회와 합의한 공동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총선 뒤 당내에선 중도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왜 중도층을 끌어안는 데 실패했는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의욕만 앞세워 (국민과) 멀어지지 않도록 개혁의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진보적 정책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진단하면서 당 노선을 ‘오른쪽’으로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당이 중도 성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에 “일리가 있다.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민생 공약은 있었으되 핵심 정책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새누리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1·15 전당대회에서 당론으로 채택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면 재검토 문제는 새누리당의 말바꾸기 공세를 받고 피해가는 데 급급하기도 했다. 이용득 최고위원은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총선에서 99%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민생이나 소상공인·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했지만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자(국민)의 뜻은 무엇인지 모르고 내(민주당) 입장에서만 책을 읽지 않았는가. 독서법이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민주당은 정책에서 진보적 뉘앙스만 풍겨 이기려 했을 뿐 그를 뒷받침하는 실천은 없었다”며 “애초부터 정책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건은 총선 이후이다. 민주당의 진보적 정책은 당초 19대 국회에서 본격 실천해야 할 과제로 제시됐다. 총선 당선자 127명은 지난 19일 ‘공약실천 국민약속 결의문’에서 “국민적 기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서민·중산층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재벌개혁 등 경제 민주화 실현, 무상보육·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확대 등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차기 국회에서도 새누리당이 제1당이 되면서 민주당이 추구하는 민생 법안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핵심 정책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를 모색하기보다 ‘중도층 잡기’를 주장하며 당내 논란만 불거지고 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총선 패배를 빌미로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 노선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진단과 처방에서 모두 오류”라고 말했다. 그는 “서민·중산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라는 방향과 노선을 설정한 상황에 변화가 없음에도 중도·진보 논쟁에 휩싸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덧붙였다. 당내에선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도 이른바 이념 논쟁에 휘말려 개혁의 동력을 잃은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다음달 4일 실시되는 원내대표 경선도 수권정당으로 가는 대안과 전망 제시보다는 지역별·계파별·선수별 합종연횡만 난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개적으로 출사표를 낸 이낙연(호남·4선), 전병헌(서울·3선) 의원을 포함한 후보군 10여명 사이에선 ‘교통정리’를 위한 물밑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원내대표나 당 대표 경선이 총선 후 제대로 된 평가나 반성 없이 지역이나 계파 간 대결 구도로 가는 걸로 비쳐지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더욱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 밖에서도 매서운 비판이 나온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노선과 선거 결과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진단해야 그에 맞는 처방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트위터에서 “대립적으로 보면 안된다. 진보화된 강령과 야권연대를 유지하면서 ‘민생·생활진보’를 추구하면 중도층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