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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란 임수경씨 글은 12년 전 글임에도 살아있는 현장성과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역대 인터넷 폭로 글의 백미(白眉)로

화이트보스 2012. 6. 6. 10:36

'5월 17일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란 임수경씨 글은 12년 전 글임에도 살아있는 현장성과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역대 인터넷 폭로 글의 백미(白眉)로 평가받는다. 2000년 6월 한 언론에 실린 원문을 보면, 임씨는 운동권 선배들이 술판을 벌이던 룸살롱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송○○ 선배는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불렀고, 박○○ 시인은 아가씨와 블루스를 추고 있었고, 김○○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임씨는 동석한 사람들을 모두 실명(實名)으로 썼다. 운동권 출신 386 국회의원이 대부분이었다.

사달은 선거에서 낙선한 우○○씨의 주폭(酒暴) 짓에서 시작된 모양이다.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아, 네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이놈의 계집애, 네가 뭔데 이 자리에 끼려고 그래? ××년.' 저는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우○○가 들어와 앉더군요. '아 그 계집애, 이상한 ×이네. 아니 제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들고 있던 참외를 내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따 대고 이×, 저×이야.'" 임씨는 폭로 글에서 자신이 말한 '씨×'을 제외한 모든 쌍욕을 그대로 적었다.

이런 저질 대화를 지면에 옮기는 것은 임씨의 글이 당시 '386 운동권'의 기묘한 권력관계와 척박한 교양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임씨는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임씨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자신에겐 쌍욕을 계속하던 우씨가 국회의원 당선자 김○○씨에게 사과한 행동 때문이었다. 임씨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 저×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 마실 팔자가 안 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권력을 가진 386 국회의원, 그들 사이에서 술을 퍼마시는 낙선자, 낙선자에게 "어딜 끼느냐"며 쌍욕을 들은 임수경…. 12년 뒤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술판을 벌이던 국회의원 8명 중 6명이 낙선했고, 그중 1명은 고인(故人)이 됐다. 반대로 임씨와 임씨에게 '주폭짓'을 하던 낙선자 우씨는 국회의원이 됐다. 배지를 달자마자 가해자가 된 주폭 피해자 임씨의 변신은 실로 극적이다.

지난 1일 임씨와 언쟁을 벌인 탈북 대학생 백요셉씨는 19대 국회의원 임수경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들아." 12년 전 임씨가 들은 폭언과 무언가 통하는 듯하다. 국회의원 신분에 대한 유아기적 특권의식, 독서를 요구받지 않은 학력고사 세대의 낮은 교양 수준….

임수경씨는 2000년에도 유명인이었다. 그날 5·18 전야제 사회를 본 임씨에게 우씨가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12년 뒤 임씨가 폭언을 한 백씨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무명 탈북자다. 임씨가 우씨보다 비열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하태경 의원을 끌어들여 새누리당과의 대립으로 넘기려는 사후(事後) 행동이다. 여당을 물고 늘어지면 여론이 바뀔 것이라는 착각 역시 정치적 교양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