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금 듣고 계신 선율, 졸업식 노래로 익숙한 올드 랭 사인이라는 외국곡입니다. 광복 이전 독립투사들이 이 곡을 애국가의 선율로 사용했습니다. 통합민주당 이석기 의원의 발언으로 애국가가 새삼 주목 받는 요즘, 너무 친숙해서 잊고 있었던 애국가의 일대기를 입체조명했습니다.
먼저 윤호진, 곽재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월드컵 축구 경기장에서, 하루 방송이 마무리 될 때도,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노래, 우리의 국가로서 울려 퍼집니다.
사료를 보면 애국가 나이는 이미 1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국가를 제정하려는 건 1902년 고종이었지만, 이미 1890년대 후반부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후렴구가 들어간 '무궁화가'가 나라의 노래로 불렸습니다.![](http://images.jtbc.co.kr/ui_jtbc/common/t_ad.gif)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민요론에서는 후렴이 같으면 같은 노래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무궁화가의 후렴과 오늘날 애국가의 후렴이 같다고 하는 건 적어도 같은 노래라고 하는 것….]
당시 무궁화가는 가사가 조금씩 다른 여러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곡조는 외국노래 '올드 랭 사인'에서 따왔습니다.
1907년 윤치호 작사로 추정되는 애국가 노랫말이 나오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4절 가사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노래로 공인된 것은 12년이 더 지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였습니다.
[노동은/중앙대 국악과 교수 :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구성원들이 애국가를 함께 불렀던, 정말로 자연스러운 노래로 존재하고 있는 거죠.]
이후 일제강점 치하에서 애국가는 핍박을 피해 여러 형태로 바뀌어 기록돼야 했고, 1941년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한국환상곡'이 붙여지면서 지금의 애국가가 됐습니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시련과 독립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당당한 나라의 목소리입니다.
지금 듣고 계신 선율, 졸업식 노래로 익숙한 올드 랭 사인이라는 외국곡입니다. 광복 이전 독립투사들이 이 곡을 애국가의 선율로 사용했습니다. 통합민주당 이석기 의원의 발언으로 애국가가 새삼 주목 받는 요즘, 너무 친숙해서 잊고 있었던 애국가의 일대기를 입체조명했습니다.
먼저 윤호진, 곽재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월드컵 축구 경기장에서, 하루 방송이 마무리 될 때도,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노래, 우리의 국가로서 울려 퍼집니다.
사료를 보면 애국가 나이는 이미 1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국가를 제정하려는 건 1902년 고종이었지만, 이미 1890년대 후반부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후렴구가 들어간 '무궁화가'가 나라의 노래로 불렸습니다.
![](http://images.jtbc.co.kr/ui_jtbc/common/t_ad.gif)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민요론에서는 후렴이 같으면 같은 노래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무궁화가의 후렴과 오늘날 애국가의 후렴이 같다고 하는 건 적어도 같은 노래라고 하는 것….]
당시 무궁화가는 가사가 조금씩 다른 여러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곡조는 외국노래 '올드 랭 사인'에서 따왔습니다.
1907년 윤치호 작사로 추정되는 애국가 노랫말이 나오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4절 가사를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노래로 공인된 것은 12년이 더 지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였습니다.
[노동은/중앙대 국악과 교수 :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구성원들이 애국가를 함께 불렀던, 정말로 자연스러운 노래로 존재하고 있는 거죠.]
이후 일제강점 치하에서 애국가는 핍박을 피해 여러 형태로 바뀌어 기록돼야 했고, 1941년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한국환상곡'이 붙여지면서 지금의 애국가가 됐습니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시련과 독립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당당한 나라의 목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