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11 03:15
내 친구 형석이 아버지는 걱정이 많았다. 아들이 공부 잘해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동네에서 수군수군하는 말이 똑똑한 애들은 데모하다 전부 감옥 간다는 얘기 아닌가. 형석이 아버지는 밤잠을 설쳤고 표시 나게 살이 빠졌다. 어릴 적부터 앞뒤 안 맞으면 자기 일 아닌 일에도 발끈하던 아이다. 아는 게 병이었고 들은 게 죄였다.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는다는데, 칠성판 위에 올려놓고 쥐포처럼 튀긴다는데.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내려오면 아버지는 불러 앉혀놓고 계속 같은 말이었다. 데모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앞에만 서지 마라. 그 꼴 못 본다. 아버지 죽는다.

결국 형석이는 제적을 당했고 감옥에서 나오기 무섭게 공장에 들어갔으며 그렇게 몇 년을 흘려보냈다. 지금은 학원 강사다. 어찌나 잘 가르치는지 강의실이 미어터진다. 술 마시던 끝에 물었다. 요새는 좌파 안 하냐. 씩 웃는다. 나, 요새는 뭘 버리는 게 아까워. 우리는 그날 안주로 나온 오징어를 눈알까지 씹어 먹었다. 대리 기사에게 어디 팰리스요 하며 키를 건넬 때 형석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자주 보지 말자, 했다. 25년 친분으로도 덮어지지 않는 형석이의 자기 결벽과 부끄러움을 나는 헤아리기 어렵다.
주변에 '강남 좌파'가 꽤 있다. 민주화 운동 시절 부모님들은 불안해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버리고 반납한 사람이라서 존중받았다. 소생은 여러분이 뭘 내려놨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주렁주렁 매달고 명예까지 획득하려는 그 '심뽀'를 모르겠다. 김영삼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지지 못하도록 하겠다, 선언해서 그렇다. 선언을 실현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보다 명료하게 정리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티브이에서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영환씨의 인터뷰를 봤다. 오십 먹은 남자의 얼굴이 기름기 한 방울 없이 저토록 담백할 수 있다니. 욕심을 버려야 생기는 게 담백이다. 정계 입문에 대해 묻는 진행자의 말에 그러면 이전의 모든 행적이 자기 영달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보이고 그게 북한 민주화 운동에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안 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힘든 길을 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의무감이라고 답변했다. 인터뷰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님 웨일즈가 사랑한 남자, '아리랑'의 김산이었다. 민혁당 당원들은 참 멋진 당수(黨首)를 가졌었구나. 인터뷰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진 건 처음이다.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갑자기 형석이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