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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괴록(慙愧錄)

화이트보스 2012. 8. 30. 11:15

참괴록(慙愧錄)
적이 칼을 휘두를 찰나 배불뚝이 당신이 떠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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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유물] ⑬ 참괴록(慙愧錄)
팽이 모양을 닮은 청자상감국화문마상배. 위에는 불꽃 무늬. 가운데는 국화 무늬, 아래엔 삼각 무늬를 그려넣었다. 동아대 박물관 제공
덕곡촌(덕천동) 언덕에서 바라보는 서산낙조(西山落照)야 풍류객으로 하여금 술잔을 기울이게 하는 풍광이지만, 누워 있는 당신 곁에서 바라보는 삼차수(낙동강 하류의 옛 이름) 물속에 잠긴 진홍 산자락은 한 떨기 슬픔이라오.

기억하건대 당신의 눈빛은 물속에 잠긴 진홍 낙조처럼 고요했다오. 당신이라는 사람은 워낙 조신해서 강변에 가서 조개를 캐어 올 때나 저녁연기 피워 올리며 밥 지을 때나 작은 소리조차도 내지 않아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했소. 탕아를 서방으로 둔 죄로 극심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눈을 치뜨거나 된소리 한 번 낸 적 없었소.

곰곰 생각해 보면 당신을 처음 만난 인연도 당신의 고요하고 신비스런 눈빛 때문이었던 것 같소. 개경의 벽란도 저잣거리에서 변발을 한 권세가가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로 양갓집 처자인 당신의 앞을 막고 고운 뺨을 만지며 희롱할 때도 소리치거나 저항하는 대신에 뒷걸음질치며 그자를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지요.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당신의 눈빛은 그자의 행패를 힘겨워하는 게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듯한 신비한 기운을 담고 있었소. 그러한 당신의 눈빛을 대하는 순간 번갯불 같은 강한 섬광이 내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소. 세상 모든 여인을 내 것인 양 여기는 풍류객으로 자처하던 내가 어찌 신비한 눈빛을 가진 여인의 곤경을 외면할 수가 있었겠소?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권세가의 뒷덜미를 후려치고는 당신을 낚아챘지 않았겠소? 그러나 나의 용기는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만용이 되고 말았지요. 권세가의 기분이 틀어지면 길에서 검을 휘둘러 사람을 베어도 하소연할 데 없는 난세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던 내 불찰이었소. 여인을 희롱하는 권세가의 위력은 우악스러운 내 손바닥보다 훨씬 강하고 집요해서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고야 말았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당신 아버지께서는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장롱 안 깊숙한 곳에 가보로 보관하던 마상배를 꺼내 왔지요.

"그대께서 내 딸을 맡아 주시게. 내 간곡히 당부함세. 그리고 이건 우리 집안에서 누대에 걸쳐 전수되는 마상배일세. 매년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 사용하던 잔인데 이 잔으로 술을 받으면 저승사자도 피해 간다고 하네."

이적(異跡)의 능력이 있다는 마상배.

풍만한 상체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날렵해지는 몸피, 천상의 색인 듯 은은한 광택, 가운데 세 곳 국화문의 신비로움이라니…. 위아래엔 당초문과 연판문이 당신의 눈을 닮은 동그란 국화를 보듬고 있는 듯했다오.

당신 아버지의 당부를 뒤로하고 길을 떠났지요. 당신은 고향 집을 차마 떠나지 못하여 뒤돌아보고 뒤돌아보았건만 나는 비색의 마상배처럼 신비로운 당신을 데려오게 되어 입만 벌어졌었다오.



개경의 여인이었던 당신은 그렇게 해서 마상배와 함께 덕곡촌 내 집으로 왔지요. 마음을 열면 천 리 밖의 미물도 보이지만 마음을 닫으면 눈앞의 들보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구려. 내 것이 아닐 때에는 신비롭게 보이던 당신도 내 집에 데려다 놓으니 본래부터 내 것인 양 소홀해지면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더이다. 정든 옛집을 떠나 천 리 남쪽으로 내려온 당신을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 염두에도 두지 않다가 필요할 때면 먼지를 털어내는 맷돌 같은 물건으로 치부했다오.

이제사 직고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살아야 할 운명을 점지받은 건지도 모르겠소. 내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자식의 이름을 바람 풍에 떨어질 락, 풍락(風落)으로 지었다오. 밤비에 핀 그토록 아름다운 꽃도 아침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니, 바람처럼 구름처럼 훨훨 날아다니면서 살라는 뜻이었다는 말을 들었소. 본래의 의미야 하 수상한 시절이니 자잘한 일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편히 숨을 쉬라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해석해 버린 것이지요. 풍류와 주색으로 말이오. 어쨌거나 난리 통에 아버지가 명을 달리하고 나자 내 안에 숨어 있던 끼가 때를 만났다오. 집안일에 연연하는 대신에 양지바른 강가에서 기녀와 가무를 즐겼고, 살빛 고운 여인이 있다 하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얼마 안 가 거덜 나고 말았소. 당신이 덕곡촌 내 집을 지키는 맷돌 같은 물건으로 들어앉았으니 내 속의 끼가 날개를 달았다고나 할까, 훌쩍 삽짝을 나서 여색을 탐하고 유흥을 즐기다가 달포나 지나서 불쑥 나타난 적이 부지기수였지요. 그때도 당신은 깊고 고요한 눈길만 보냈을 뿐 된소리 한 번 낸 적 없었고요. 된소리는 고사하고 언제 있을지 모르는 서방의 출타를 대비하여 저고리에 동정을 달고 다림질을 했지요. 본래부터 농부의 딸인 것처럼 조개를 캐고 밭을 갈며 집안을 갈무리하면서 말이오.



우리네 인생사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방향이 급하게 바뀌는 경우가 있지요. 칙령이 바로 그런 것이었지요. 왕국에 사는 열여섯이 넘은 모든 남정네를 징집한다는 상감의 칙령이 떨어졌잖아요. 칙령을 받들지 않으면 불문곡직 창검이 춤을 추는 세상에 언감생심 딴마음을 먹으리오?

-동래 현의 남정네는 유월 초하루 진시에 굿개(지금의 구포) 팽나무 앞으로 나오라.-

현감의 영을 받은 나장들이 굿개뿐 아니라 덕곡촌(지금의 덕천동) 사천면 상단(지금의 사상) 쇠푸니(금곡동) 고샅길까지 빠짐없이 누볐지요.

당신과 보낸 마지막 밤이 생각나오. 병사가 되어 낯선 들과 산에서 몽고 병사와 싸워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니 몹시 심란했소. 칠흑 같은 그믐밤에 당신은 잠을 못 이루고 숨죽인 한숨 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이더이다. 그때도 나는 생각 짧은 여편네가 먼 길 떠나는 서방이 눈도 못 붙이게 한다고 타박을 놓았잖소? 방탕한 서방도 지아비인지라 그 안위가 염려되어 나오는 한숨인데도 그를 헤아리지도 못했다니…. 짧은 소견이 한스럽소.

불면의 밤이 지나니 먼동이 트고 해가 나오더이다.

당신이 정성껏 빨아서 다린 옷을 입고 막 삽짝을 나서는 참이었지요.

"서방님, 잠시만 기다리시오."

당신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잔에다가 술을 철철 넘치도록 따라왔지요.

"아, 청자마상배!"

아이가 제 어미의 말을 따르듯 나는 단숨에 들이켰소. 얼얼한 기운이 뱃속에서 온몸으로 번지더이다. 그때였소. 당신의 둥근 배가 눈에 들어온 것이. 칠월 하순이면 몸을 풀 것이라고 했지요. 아내가 만삭이 된 줄도 모르다니? 그동안의 내 방탕한 행적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지더이다. 아마도 당신에 대해 처음으로 가진 연민이었던 거 같소. 당신이 먼지 앉은 집지킴이 맷돌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보였던 게지요.

"당신도 한 잔 마셔요."

지난달에도 절영과 다대에 왜구가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도륙 냈다는 게 생각났던 게요. 그러나 당신은 웃었지요.

"집에 있는 사람이 무슨 문제입니까? 내 걱정은 말고 빨리 가시지요."

당신 역시 처음으로 내 말을 거역하였고요.



이제 당신에게 내가 살아 돌아온 과정을 고해야겠구려. 내가 살아난 것은 내 얼굴에 번진 고요한 미소 덕분이었소. 세가 쪼그라진 우리 무리는 불운하게도 호강(금강의 옛 이름) 근처에서 적병과 딱 마주쳤다오. 싸운다고는 했지만 애당초 잘 훈련받은 몽고군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지요. 우리들은 혼이 빠져 산으로 도망을 쳤소. 기력이 쇠해서 저항할 힘도 없었소. 오리나무 뒤에서 숨을 헐떡이던 내게 변발을 한 병사가 다가오더이다. 야차와도 같은 그 병사가 칼을 치켜들더군요. 내 삶도 이렇게 끝나네. 바람처럼 다니면서 내 멋대로 살아온 벌을 이렇게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이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글쎄 내 어머니도 아니고, 만리장성을 쌓은 살빛 고운 숱한 여인들도 아니었소. 마상배에 술을 부어 권하던 바로 배불뚝이 당신이었던 게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기이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천진하고 고요한 미소를 띠었소. 몽고 병사는 내 미소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더이다. 그러더니 칼로 뒤에 있는 덤불을 가리키고는 웬걸, 칼집에 철커덕 넣는 게 아니겠소? 그리고는 목청껏 외치더군요. 다 베었다. 이제 돌아가자. 나는 덤불 밑에 숨어서 몽고 병사가 물러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소.



그렇게 해서 목숨을 부지했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되뇌며 산속으로 숨어들어 남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지요.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거지꼴의 입성이었으니 짐승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을게요. 그러나 나는 내 몰골을 돌아볼 염도 내지 못했소. 그저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감각도 없이 발길을 옮겼을 뿐이었소. 그렇게 혼이 빠진 상태로 내려온 끝에 삼차수 건너 월촌의 쾌용 노인을 만났소. 나룻배로 건너오면서 덕곡촌의 안부를 물었다오. 쾌용 노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겠소. 가슴이 터질 듯하더이다. 더 묻지도 못하고 굿개에 내려 언덕을 올랐소.

모롱이를 돌았는데도 여남은 채 되던 덕곡촌 초옥들이 보이지 않더군요. 마을이 있던 자리는 온통 쑥대밭으로 변해 있더이다. 돌담으로 어림해서 내 집이었던 곳으로 불쑥 들어섰소. 집터 한켠에 당신이 있더군요. 편안하게 눕지도 못하고 돌담에 기대앉은 자세로 얼굴은 저 삽짝을 향하고 있었소. 그런데, 아, 당신의 고운 피부는 어디로 가고 육탈해서 형편없이 쪼그라든 유해가 되어 있더이다. 돌담에 기대앉아 합장하듯이 두 손으로 마상배 술잔을 꼬옥 부여잡고 말이오.

동행해 준 쾌용 노인이 더듬거렸소.

"왜구들이 마상배를 빼앗자 자네 처가 괭이로 왜구 한 놈을 내리쳤네. 자기 패거리 중의 한 놈이 죽자 눈이 뒤집힌 왜구들은 마을 사람들을 도륙을 냈네. 뿐만 아니라 근동을 돌면서 덕곡촌에 한 발짝이라도 들어선다면 그 집안은 씨를 말릴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네. 용, 용서해 주시게. 그래서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네."

그때서야 나는 당신 앞에 꿇어앉아 단말마와 같은 울음을 토해냈소.…


내 손으로 당신 유해를 수습했소. 덕곡촌 양지바른 언덕에 당신이 영면할 잠자리를 만들었소. 물론 기품 있는 처가 집안에서 제를 올릴 때 술잔으로 쓰던 마상배도 당신 가슴에 안겨 드렸고요. 그러자 당신의 고운 얼굴과 비색의 마상배가 하나인 양 내 가슴에 아로새겨지더이다.

삼차수 물속에 잠긴 강 건너 산은 진홍빛이 짙어가고 있소. 진홍 낙조는 당신의 무덤가에 둘러놓고 고요하고 신비스런 당신 눈빛을 참괴로 터질 듯한 가슴에 담아 홀로 내려가려고 하오. 그럼….





덕천동 출토 유적 청자상감국화문마상배 / 고려시대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

중앙 원 안에 국화문 장식



북구 덕천동 산 107-11번지 일대에 있는 덕천동 유적(부산 북구 문화빙상센터)은 구포왜성의 지성으로 추정되던 곳이다. 발굴 조사 결과 삼한·삼국 시대 목곽묘 2기, 고려 시대 분묘 18기, 조선 시대 분묘 105기 등 여러 시기에 걸친 분묘 유적이 조사됐다.

고려 시대에서는 각종 청자와 도기, 청동거울(銅鏡), 육도전(六道錢) 등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유물이 양호한 상태로 출토됐다. 지금껏 부산 인근에서는 이런 고급 청자 생산지가 확인된 바 없으며, 유색이나 형태 면에서 당시 최고급품으로 알려진 전남 강진 지역 제품과 유사성이 발견돼, 그 지역에서 생산되어 이곳까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 이 지역이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타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청동거울, 청동제 그릇, 반지 등 상품(上品) 유물이 함께 출토된 것은 당시 구포 지역 토호들의 높은 경제력과 사회적 위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인근에 만덕사지가 위치해 만덕사지 건립 세력과의 관련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청자상감국화문마상배는 고려 시대 분묘에서 출토됐다. 마상배는 말 위에서 사용하는 술잔이다. 팽이 모양의 청자상감국화문마상배는 그릇 표면에 3단으로 무늬를 배치했다. 가장자리는 아(亞)자문 또는 화염문을 일렬로 두르고, 중앙엔 이중의 원 안에 국화문을 장식했다. 뾰족한 하단에는 삼각문을 넣었다. 아가리 일부는 파손됐다. 생산지가 전남 강진으로 추정되는 고급품으로 높이 9.8㎝, 아가리 지름 7㎝이다.

최정혜/부산박물관 유물관리팀 팀장
덕천동 유적 고려 시대 분묘에서 출토될 당시의 청자상감국화문마상배. 청동제 접시, 청동제 대접, 청동제 숟가락·젓가락 등과 함께 출토됐다. 동아대 박물관 제공

구영도 / 소설가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작품집 '가면의 계절'. 현 봉삼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