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는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지난 2008년 2월 16일 한 여성노인 환자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위한 기관지 내시경 검사 중 대량 출혈로 인한 심폐정지 상태에 빠졌다. 의료진은 기관 삽관 및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하였으나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삶을 이어갔다. 이에 환자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에 관한 가처분 신청 및 본안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평소 환자가 ‘품위 있게 죽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병원윤리위원회와 환자 가족이 합의하여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게 되었는데 호흡곤란으로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는 의료진의 진단과는 달리 한 차례의 위급상황을 겪었지만 약 200여일을 자발적 호흡을 지속하다가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참고로 가족들은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수혈 등은 거부했지만 항생제, 영양제, 이뇨제 등의 내과적 치료는 처음부터 요청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 1997년 발생했던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로 다시 안락사, 존엄사, 사전의료의향서, 아름다운 죽음, 죽음준비교육, 인간답게 죽을 권리 등의 해석과 견해로 미디어 매체는 떠들썩했다. 미국(연방법)은 환자자기결정법(1990), 통일 보건의료의사결정법(1993)이 있으며 싱가포르는 사전의료의향서법(1996), 대만은 안녕완화의료조례(2011 통과), 일본은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발표 2007)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호스피스법안(2008), 존엄사법안(2009), 자연사법안(2009)이 제출된 상태일 뿐으로 사전의료의향서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국민적 동의가 부족한 단계이기 때문에 위의 사건내용과 관련된 문제와 함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는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인공호흡기는 그 자체만 해도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 이미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지켜보는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말이 없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죽음이 예견되는 절박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의료기준에 대해 결정하라고 할 수 없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회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가족들은 그저 숨만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매우 클 수 있다. 또 더욱이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정신적인 혼돈과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회생불가능한 상태의 진단을 받은 경우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유비무환(有備無患)’ 즉 미리 준비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인정하고 아픔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미래의 삶을 계획하듯 그 계획안에‘사전의료의향서’를 추천해본다. ‘사전의료의향서’는 나 자신에 대한 의료행위의 기준을 의료진에게 전하는 의견서이며 자신의 인생설계서의 한 페이지다. 죽음이라는 상황을 미리 생각해 두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세우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그 시점을 모르고 또 피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는 특별하게 정해진 양식은 없다. 본인의 의사가 서술되고 의료진에게 전달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 결정이 최우선된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자필이면 더욱 좋다. 그 결정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변경 및 철회가 가능하다. 환자가 회복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말기 상태에 진입하였을 때 무의미하다고 인정되는 연명치료에 대한 본인의 의향(적용기준, 사양 또는 거부 등)을 기록하면 된다. 단, 환자 본인의 가치관이 반영되고 자율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기록되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개입(보라매병원 사례)되질 않길 바랄뿐이다.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블랙스완(죽음)을 어차피 피하지 못한다면 블랙스완과 친해지자. 블랙스완을 무시하거나, 두려워서 피하거나, 내 인생에서 꽁꽁 숨겨두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앞에 다가선 블랙스완에 깜작 놀라 자빠지지 말고 옆에 두고 함께 놀자. 인생은‘나’라는 배우의 연극이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극본에 블랙스완을 등장시키자. 이로써 블랙스완과 함께 멋진 인생을 연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내 인생에 가슴 벅찬 일이 아니던가?
※ ‘사전의료의향서’는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비롯될 수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하여 죽음의 본질(극복할 수 없는 것)이 왜곡되는 현실적(의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문서이다. 말 그대로 사전(事前)에 즉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가 시행되기 전에 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행위 기준이나 한계, 범위 등을 기록한 자기 의견서를 말한다.
※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전유언장 중에서 (일본의 존엄한 죽음을 실천하는 모임, 10만 명 회원가입)
1. 저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을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2.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해 예를 들어 마약 등의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3. 제가 몇 개월 이상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는 생명유지를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국내에서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생명윤리정책센터와 함께 ‘사전의료의향서’를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두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신청 및 변경이 가능하고 사본을 보관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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