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두 딸 결혼시키며 두 원칙 지켰다… NO 혼수, NO 하우스"

화이트보스 2012. 9. 27. 09:57

"두 딸 결혼시키며 두 원칙 지켰다… NO 혼수, NO 하우스"

  • 김연주 기자
  • 입력 : 2012.09.27 03:01

    6부-[9]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약속

    나도 큰아버지 주례로 작은 결혼 - 큰딸 보낼 땐 양가 부모만 참석
    교회 본당서 결혼한 누나 보고 아들은 소예배실서 한다더라
    부모가 집? 외국선 신문에 날 일 - 첫째 딸은 월세로 시작하고
    둘째 딸은 본인 힘으로 전세… 요란한 결혼, 벼락부자들 문화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캠페인에서 제시하는 검소하고 작은 결혼식으로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사회 지도층부터 이런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1남2녀를 둔 전광우(63)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010년 5월 중순 하루 휴가를 내고 부인과 함께 미국에 갔다가 2박3일 만에 돌아왔다. 공단 측에는 "집안일이 있다"고만 했다.

    주말 동안 전 이사장 부부는 첫째 딸 은경(31)씨 결혼식에 참석했다. 은경씨는 미국 시카고 교외 조그만 교회에서 양가 부모님만 참석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반주는 음악을 전공한 전 이사장 안사돈이 맡았다. 전 이사장은 "미국에 따라가겠다"던 한국에 있는 친척들조차 말렸다.

    전 이사장은 공직(금융위원회 위원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던 2009년 둘째 딸 희경(30)씨의 결혼식도 서울의 한 교회에서 가족·친척·교회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렀다.

    "아무 데도 안 알렸더니 나중에 서운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도 서운하다는 얘기 듣는 것이 불편한 부담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알리면 우리나라 제일 '큰손'들이 연결될 때가 너무 많으니까요."

    자산 38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공단을 이끌고 있는 전 이사장은 과거 세계은행 등에 근무하며 23년간 해외 생활을 했다. 그는 "2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본 것 중에 결혼 문화가 가장 많이 변했고 외국과 차이 나더라"고 했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 근무 때 세계 각국을 방문했다. 요란스러운 결혼은 후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였다고 그는 말했다. "인도의 철강 부호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빌려 딸 결혼 리셉션(축하연)을 하고, 이집트 상류층이 호화롭게 결혼하는 걸 봤지요.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그런 요란스러운 결혼을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와서 우리 결혼 문화를 보고 '아 나라는 발전했는데, 이 문화는 오히려 퇴보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전 이사장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가치보다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쪽으로만 관심이 너무 많이 간 것 같다"고 했다. 뿌리 깊은 가문과 벼락부자 된 가정의 문화 차이를 이에 비유했다. 그는 "현재 결혼 문화는 우리가 품격 있는 사회, 선진 문화로 가는 과정에서 꼭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전 이사장은 "결혼식에 많이 가지만 끝까지 지켜보거나 밥을 먹고 온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한 때일수록 사회 지도층, 여유가 있는 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전광우 이사장 부부가 2010년 5월 미국 시카고 교외의 조그만 교회에서 열린 첫째 딸 은경씨의 결혼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양가 부모만 참석한 ‘작은 결혼식’이었다. /전광우 이사장 제공

    전 이사장은 두 딸을 결혼시킬 때 '두 가지 노(No)' 원칙을 지켰다. 하나는 "혼수는 없다"였고, 또 하나는 "부모가 집값 대주는 일 없다" 였다. '노 혼수, 노 하우스' 원칙이었다.

    해외에서 오래 자란 자녀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돈들도 동감했다. 현재 전 이사장 첫째 딸 부부는 미국에서 렌트(월세)로 살고 있고 둘째 딸 부부는 자기 힘으로 마련한 서울 강북 전셋집에 산다. 그는 "외국에서는 대게 본인이 벌어서 다달이 집세 내고 조금씩 저축해 종잣돈이 모이면 집을 사고, 여유가 있는 집 자식들도 스스로 자립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며 "부모가 집 사주고 이런 건 어디 신문에나 날 일"이라고 했다.

    그는 "27세 막내아들도 당연히 첫째·둘째 딸처럼 가족들끼리만 모여 축하하는 작은 결혼식을 시키겠다"고 했다. 아들 스스로도 "누나(전 이사장의 둘째 딸)는 교회 본당에서 했지만 나에겐 본당도 크다. 교회 소예배실에서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 전 이사장은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부인(하정화씨)과 1980년 결혼할 때 가족·친지 중심으로 작은 결혼식을 했고, 큰아버님이 주례를 섰다. 전 이사장도 만 30개월 된 외손주의 주례를 서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