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 많아진 이유
과거엔 성장의 혜택이 저소득 계층까지 나눠져… 지금은 소득불평등 심화
성장·분배 이분법 넘어야
결과 불평등만 얘기말고 막힌 계층이동 살핀다면 경제활력 높여 성장 가능
과거에는 이런 논의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성장의 혜택이 경제 구성원에게 비교적 골고루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Gini)계수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경제성장의 대가가 오히려 저소득 계층에게 더 많이 돌아갔음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높은 성장률에 환호할 수 있었다. 당시에 경제성장이 가장 우선시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부 성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도 있었지만 이들의 불만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유는 한국경제에서 계층 간 구조가 건전한 다이내믹스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에서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계층 간 이동이 빈번했다. 저소득 계층에 속해 있어 비록 당장은 나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지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계층 상승을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소득불평등의 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런 다이내믹스가 얼마나 살아 있는가 여부이다. 아무리 소득불평등이 심하더라도 나의 노력에 의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오히려 이런 소득불평등은 열심히 노력할 유인으로 작용한다. 적당한 소득불평등하에서 계층 간의 활발한 이동 기회가 제공된다면 경제의 활력이 생기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진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는 사회의 심각한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최근 연구는 사회범죄와 같은 사회불안정 지표가 소득불평등 자체보다 소득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에 더욱 의존한다는 결과를 보여 줌으로써 그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건전한 다이내믹스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공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공교육이 지나친 평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평준화로 인해 공교육으로는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자 이 틈을 비집고 사교육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말았다. 결국 사교육을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 교육의 대가가 집중됨에 따라 부의 대물림이 강화되고 계층 간 이동 가능성도 줄었다.
둘째, 경제력 집중으로 이들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졌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부유층은 경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도록 법제도의 개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고소득자들의 입지를 합법적으로 더욱 공고화해 줌으로써 계층 간의 이동을 방해한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라고 생각된다. 여야 주자 할 것 없이 모두 경제 민주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경제 민주화 논의를 들으며 아쉽게 생각되는 대목이 있다. 경제 민주화는 결과로서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고 이를 위해 분배를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열심히 일할 유인이 줄고 결국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분배와 성장 사이의 이분법적인 태도 때문에 낮은 성장률을 개선하려는 주장은 힘이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소득불평등 자체의 개선보다 계층 간 이동을 촉진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계층 간 이동이 다시 촉진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든다면 소득불평등의 문제도 개선되는 동시에 경제의 활력을 높여 경제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